새로운 밀레니엄의 첫 해가 금융시장의 혼란 등으로 암울한 분위기속에서 저물어 가고 있다.

벤처열풍 등으로 기대가 충만했던 연초를 떠올리면 허망하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새 밀레니엄의 시작은 2000년이 아니라 2001년이라고 우기고 싶은 것도 지금의 어려운 경제현실이 올해로 끝났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싶다.

지난 1년동안 우리경제를 되돌아보면 무척 혼란스러웠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실 숫자로 나타난 경제 성적표를 보면 나무랄데가 없어 보인다.

성장률은 9% 수준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데다 1백억달러가 넘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고, 물가는 2%대를 맴돌았다.

외환보유고도 9백억달러 넘게 쌓아 놓았으니 어느모로 보더라도 손색이 없는 건실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그러나 서민들은 물론이고 기업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느낀 체감경기는 1년 내내 싸늘하기만 했다.

국제유가 상승과 반도체가격 하락 등으로 대외여건이 악화되면서 벌어들인 소득이 해외로 빠져 나가 실질국민소득이 둔화되고, 주가폭락으로 가만히 앉아서 재산이 반토막으로 줄어드는 쓰라림을 겪어야만 했다.

결국 씀씀이가 줄어 내수침체로 이어지면서 성장이 급격히 둔화되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는게 그동안 진행돼온 우리경제의 큰 흐름이라 하겠다.

경기과열을 걱정할 정도로 호황을 구가하던 경제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에 대해 여러가지 면에서 그 요인을 짚어 볼 수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금융시장의 혼란이 아닌가 싶다.

사실 지금은 금융시장의 기능이 정지된 상태나 마찬가지다.

은행은 구조조정의 와중에서 본래의 금융중개기능은 외면한채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데 집착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여 왔고, 이는 기업들의 자금경색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주식시장 침체는 물론 채권시장까지 작동이 멈춰버림으로써 기업들은 직접금융시장 마저 이용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들의 잇단 유동성 위기가 겹치면서 금융불안을 더욱 증폭시켰음은 물론이다.

대우그룹의 좌초로 내재됐던 금융부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현대건설의 자금난이 불거지면서 기업도산과 금융부실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2단계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 방침이 발표되면서 경제의 동맥경화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내실을 다지기 위한 불가피한 진통으로 이해하지만 과연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경제불안 요인으로 가장 빈번하게 지목됐던 것이 정책에 대한 불신이었다.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의 원칙이 수시로 바뀌는가 하면 공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노사문제를 풀어가는데 원칙이 흔들리면서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을 키워 온게 사실이다.

더구나 아직도 상황이 전혀 변한게 없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급격한 경기위축과 구조조정의 와중에서 기업들이 겪은 고통이 적지않았음은 충분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아픔이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만 하지만 자칫 기업의욕 자체가 꺾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새해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리라고 한다.

경제성장률이 내년 상반기에는 4%대로 주저앉을 것이라는게 연구기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업자가 1백만명을 넘어서리라는 암울한 전망도 곁들여진다.

그렇다고 좌절해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언젠가는 성장에너지로 바꿔지리라 믿기 때문이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자세하게 적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워낙 혼란스런 경제상황 탓으로 한해를 보내면서 새해의 희망을 거론하기조차 거북스러운게 오늘의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두고 볼 일만도 아님은 더욱 분명하다.

경제위축에 못지않게 자신감의 상실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는 정부가 맡아야 할 몫이지만 모든 경제주체들의 반성과 다짐이 한데 어우러진다면 위기극복은 훨씬 앞당겨질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