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살았다" 보오미거울의 이용덕(56) 사장은 3일 일본 다나카아이로부터 날아온 수출주문서를 받아들고 함성을 질렀다.

올 한햇동안 방습·김서림방지 거울 2백5만달러어치를 공급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주문서를 함께 보던 수출팀의 김경석(38)씨는 그만 눈물을 훔쳤다.

지난 3년간 고생한 기억이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부도를 맞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보오미거울은 3년 전까지만 해도 현대 삼성 LG SK 대림 등 국내 1천여개 건설업체에 납품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거울 생산업체였다.

경기 파주에 대지 4천5백평,건평 2천3백평 규모의 완전자동화된 공장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 1월 중소건설업체에서 받은 20억원짜리 어음이 부도나는 바람에 연쇄부도를 맞았다.

곧바로 채권자들이 들이닥쳤다.

33년간 오로지 거울에만 매달려온 외길인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사장은 피하지 않았다.

일단 피신을 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마음을 바꿔 먹었다.

집으로 돌아가 가방을 챙겼다.

속옷 5벌과 운동복 1벌을 가방에 넣고 공장 숙직실로 향했다.

사실 달리 갈 곳도 없었다.

서울 불광동 자택이 경매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아내와 자식들은 원당에 있는 큰딸 집으로 보냈다.

이 사장은 부도 이후 1년을 회사 숙직실에서 지냈다.

직원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회사 살리기에 온 힘을 쏟았다.

나머지 재산도 모두 정리했다.

창업 때 본사가 있었던 연신내 땅과 강원 홍천에 사뒀던 임야 1만평을 처분했다.

노후를 대비해 장만해 두었던 청주의 상가도 팔아버렸다.

이 돈을 모두 회사에 투입했다.

덕분에 부채비율이 4백%선에서 1백90%로 떨어졌다.

채권자들도 이 사장의 헌신적인 노력을 보고 빚독촉을 중단했다.

법원에서 화의인가도 받아냈다.

채권자들의 독촉에서 벗어나면서 이 사장은 본격적인 회생작업을 펼쳤다.

우선 독특한 기능을 가진 특수거울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기로 했다.

국내수요만으로는 미래를 장담하지 못한다고 판단,해외를 뚫기로 했다.

탈출구로 삼은 것이 ''김서림방지 거울''이었다.

보오미거울은 2년간 연구개발에 매달렸다.

드디어 발열코팅에 의한 김서림방지 거울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일본에도 김서림방지 거울이 많지만 대부분 전기를 이용한 것이어서 보오미의 김서림방지 거울은 대번에 인기를 끌었다.

김서림방지 거울의 본고장인 일본에서 한꺼번에 2백만달러어치 이상의 주문을 받아냈다.

바로 그 주문서가 3일 도착한 것이다.

조만간 미국 JS글라스와 일본의 사사야마에서도 수출주문이 들어오게 돼 있다.

보오미거울의 올 매출은 1백6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3일 보오미거울의 임직원 50명은 공장 마당에서 파티 겸 결의대회를 가졌다.

직원들은 결의대회에서 ''세계최고 보오미''를 외쳤다.

이 자리에서 이 사장은 "보오미거울은 쓰러졌다 일어선 기업의 ''거울''"이라며 "앞으로는 온나라에 희망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치구 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