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학B2B 세계표준의 선봉 ]

독일 레버쿠젠 본사의 K9건물 233호.

회의용 탁자와 의자가 놓인 이 평범한 사무실에서 바이엘의 사사(社史)에 기록될 행사가 벌어졌다.

바이엘의 조달부서가 온라인 경매를 통해 원자재를 구매하는 원자재 인터넷경매가 실시된 것이다.

2000년 4월6일 오후4시였다.

이날 조달과 직원들은 인터넷 경매장인 "포르툼"에 참가해 포장재인 판지상자를 구매했다.

보통 때보다 15% 싼 값이었다.

인터넷을 통한 원가 절감이 실천되는 현장이었다.

e비즈라는 첨단 무기를 통해 바이엘이 노리는 목표는 구경제 시대의 경쟁력인 연구개발 능력과 글로벌 브랜드를 지렛대 삼아 신경제형 고객만족 기업으로 재탄생하는 것.

이를 위해 인터넷을 도구로 전(全)경영 과정을 합리화하고 비용 절감과 고객 중심 경영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 올리자는 전략이다.

조달-생산-마케팅-판매-고객서비스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중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에서 이날 e조달은 바이엘의 기념비적 행사였다.

바이엘이 e조달만으로 이룰 원가절감액은 16~18%에 달한다.

그러나 e마켓에서 싼값에 원자재를 사들이는 것만으로 e비즈의 주역이 될 수는 없다.

게임 룰을 정하는 사이버 시장의 주도자가 되지 않고는 확고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바이엘이 켐커넥트를 포함, 7개의 e시장에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학 및 제약 분야 사이버 시장의 세계 표준을 장악하자는 속셈이다.

그런데 바이엘이 투자한 e마켓의 주주 명단에는 의외의 이름이 등장한다.

화학관련 장비 및 서비스 제공 사이트인 켐플로러(훽스트) 열가소성 수지 온라인 시장인 옴넥서스(듀폰 바스프 다우케미컬), 화학제품을 거래하는 사이트인 캠커넥트(바스프 다우케미컬 듀폰), 사이버 화학거래 시장 엘레미카(다우케미칼 듀폰)...

굴뚝 세계에서 바이엘의 최대 경쟁자들이 공동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경쟁자가 사이버 세계에서는 "동업자"로 둔갑한 것이다.

협력과 경쟁이 동반되는 코피티션(coopetition)이다.

네트워크의 파워를 키워 업계표준을 장악하자면 경쟁업체라도 "글로벌 강자"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e비즈의 핵심 법칙을 실천하고 있다.

화학업종의 특성상 바이엘의 e비즈 무게 중심은 B2B에 쏠려 있다.

B2B 전략의 특징은 "다점포형 e스토어".

베르너 스피너 이사가 설명하는 이유는 이렇다.

"1만여개가 넘는 바이엘의 제품을 죽 늘어 놓는 백화점식 전략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 원자재 가죽 플라스틱 등 제품별로 특성이나 고객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분야별로 차별화된 솔루션이 필요하다"

현재 바이엘은 총 18개의 사이트를 운영중이다.

이중에서 바이엘원(BayerONE) 포털은 인터넷을 통해 고객 서비스를 한차원 높인 대표적인 예.

바이엘과 1백여개의 플라스틱 및 폴리우레탄 고객사는 이 사이트를 통해 24시간 연결돼 있다.

고객사들은 자사의 주문이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문제는 무엇인지를 언제 어디서라도 체크할 수 있다.

새로운 제품 발주나 구매 제품에 대한 기술 지원도 가능하다.

바이엘은 광고 및 M&A(합병 및 인수), 제휴 등의 비용을 제외하고 순수한 e비즈 구조개발에만 매년 8천만유로(약 9백50억원)를 투입하고 있다.

IT(정보기술)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를 통해 지난해 1%에도 못미쳤던 인터넷 매출 비중을 2004년에는 2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게 바이엘의 목표다.

첨단 업종의 기업에 비하면 높지 않은 비율이다.

그러나 바이엘의 e비즈는 "일과성 유행전략"과 거리가 멀다.

구경제와 신경제의 최적 혼합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21세기형 경쟁력을 갖춰 나가는 것.

바이엘 e비즈의 차별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레버쿠젠(독일)=노혜령 기자 h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