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세기 최악의 경제예측 사례로 어빙 피셔(Irving Fisher,1867∼1947) 교수의 주가전망이 꼽힌다.

미국의 대표적 신고전파 경제학자이자 화폐수량설로 유명한 피셔 교수는 세계대공황의 시작인 1929년 10월 미국의 주가 대폭락이 일어나기 불과 며칠 전 주가급등을 예고했던 것이다.

당시 예일대학의 저명한 경제학 교수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거액의 주식투자를 하면서 경제예측가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경제를 예측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경제전문가들이 미래를 예측하면서 소수점까지 사용하는 것을 보면 꽤나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빗대어 말하는 것도 그런 뜻일 게다.

새해벽두부터 국내는 물론 세계 경제기상도에 변화조짐이 일고 있다.

미국금리가 전격적으로,그것도 예상보다 큰 폭으로 인하되면서 곤두박질치던 주식시장이 폭등세로 돌아섰다.

미국 주가뿐만 아니라 국내 주가도 덩달아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정부는 예산의 조기집행과 신도시 건설 등 경기부양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불과 며칠 전이지만 지난해 말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벌써부터 국내경기가 예상보다 빨리 호전되는게 아니냐는 성급한 생각마저 솔솔 피어오른다.

그러나 그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미국이 그만큼 다급한 상황에 처해있음을 반증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고 생각하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하루 아침에 경제의 본질이 바뀔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오히려 낙관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대다수의 국내 연구기관들은 올 1·4분기 경제성장률이 3∼4%에 머물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해 같은기간의 12.7%에 비하면 성장속도가 3분의 1 이하로 줄어드는 급속한 감속이다.

실업자도 1백만명을 넘어서리라고 한다.

더구나 민간소비 위축이 심각한 지경이어서 생산감소와 경기침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게 경제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부가 제한적이지만 경기부양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최소한 그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단에서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정부의 경기대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나서 경기부양에 나서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는 것이다.

물론 기업구조조정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경기부양에 나서는 것은 다소 위험스런 측면이 없지 않다.

고통이 줄어들면 각 분야에서 한창 진행중인 구조조정이 느슨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어떤 시한을 정해 끝낼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단기적 경기조절 정책과 양립시킬 수 없는 택일의 문제로 보는 것은 무리다.

실업대책의 확대나 사회간접시설의 확충 등 제한적인 경기부양책은 오히려 구조조정에 도움이 될수도 있다.

더구나 미국경제가 금리를 허겁지겁 내릴 정도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 충격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리기 위한 완충장치란 측면도 과소평가해선 안된다.

문제는 기업들의 자세다.

경기가 풀린다고 해서 구조조정의 당위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관치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미국의 금리인하와 국내 경기부양책 추진이 우리 경제를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바꾸어 놓을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경착륙의 충격을 줄여주는 효과를 가져올 것임은 틀림없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제프리 삭스 교수는 본지 특파원과의 대담에서 "한국경제는 지난 30년간 좋았듯이 앞으로 30년도 좋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한국처럼 기술력을 갖고 있고 높은 교육수준과 저축률을 가지고 있는 경제는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는게 그 이유다.

우리경제의 장래가 밝다는데 대해 대체로 이론이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하루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보면 금세 좋아지리라고 기대하는 것 또한 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