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어느 지방 강연 때의 일이다.

장미빛 전망만 믿고 기다리다 큰 손실을 입은 중년 부인 한 분이 강연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강연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도착한 그녀는 일찌감치 심상찮은 분위기를 예고했다.

강연에 앞서 마련된 개별 클리닉에서부터 그간 쌓인 분노를 폭발했던 것이다.

"당신 같은 전문가들 땜에 다 죽게 생겼다.

연말 주가 얼마까지 간다 어쩐다 그렇게 큰소리 뻥뻥 치더니 이게 뭐냐"며 포문을 열자 평온하던 상담실이 갑자기 싸늘하게 얼어 붙었다.

그릇된 투자습관 운운하며 소위 투자클리닉을 시도하던 우리 직원도 속수무책이었다.

입을 열기가 무섭게 그분의 속사포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감정이 격앙된 그녀는 마침내 "잡아 가두니 죽이니 살리니" 하는 험한 말까지 마구 쏟아 냈다.

그러기를 한 시간.

가만있지 않겠다는 경고와 함께 1차전이 끝났다.

잠시 후 강연장에도 모습을 나타냈다.

여전히 상기된 표정이었다.

별 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하는 염려 속에 강의가 시작됐다.

주가가 오르고 내릴 확률은 결국 반반이다,예측을 액면 그대로 믿는 건 곤란하다,주식은 위험관리를 하면서 장이 올 때까지 살아 남는 생존 게임이다.

한참 열을 올리고 있는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말했다.

"이제 기분 좀 풀고 고개를 드십시오.얼마까지 간다,저평가됐다 어떻다 해서 폐를 끼친 점,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정중하게 사과 드립니다.

하지만 주가는 전문가가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3백만 투자자가 결정하는 겁니다.

따라서 전문가의 예측보다 시장의 가격을 더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곤 예(例)의 고스톱 비유를 댔다.

청단 석 장을 ''쥔'' 패가 최악의 패다.

그걸 쥐었다는 것때문에 망한다.

청단에 대한 미련으로 쌍피 내주고 뭐 내주고 하다가 쓰리고에 피박을 쓴다는 말이다.

청단이 있어도 쌍피를 먼저 쳐서 일단 피박부터 면해야 한다.

말(末)에 질 수도 있고 설사를 할 수도 있으니 청단이 나고 말고는 뒷손이 말해 주는 것이다.

주가도 시장이 말해 준다.

그러니 아무리 좋다는 주식도 사는 순간 손절매 계획부터 세워야 한다.

추천주니 연말 주가니 하는 것만 믿고 대책 없이 기다려선 안 된다.

믿는 구석이 있을수록 더욱 손절매를 못하고,그러다가 대부분 크게 잃는다.

그렇게들 왕창 깨질 바에야 차라리 신문도 만화만 보는 게 낫지 않겠는가.

생명도 한 번 가면 못 돌아오듯 계좌도 딱 한 번 깡통으로 끝이다.

수익보다 생존이 우선이다.

이렇게 갖은 비유와 역설로 달랜 보람도 없이 결국 그 사모님은 한바탕 2차전을 치르고 유유히 사라졌다.

아,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3차전이 또 남아 있을 줄이야.이튿날 그녀의 악의적이고 과장된 제보(?)를 받은 어느 기자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 하나하나에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 줄 아느냐.신문은 꼭 만화만 봐라 했다는데 진짜냐.신문은 다 거짓말이라 했다는데 정말이냐 하면서 호되게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참 억울한 노릇이었지만 그걸로 그녀의 분이 풀린다면 그냥 감내하리라 하며 참고 말았다.

전문가들이 뿌린 씨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후야 어찌 됐든 여전히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장미빛 전망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희망은 약이 아니라 독이라는 것이다.

불행은 도둑처럼 다가온다.

항상 대비하며 살자.

김지민 현대증권투자클리닉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