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만난 부부팀의 첫홀 대화내용."여보,볼 많이 가져왔죠?" "그럼,어제 오백원짜리 헌 볼로 한 박스 샀지.오늘은 볼 걱정 안해도 돼" ''아이고 난 죽었다''고 생각했지요.

앞팀이 티샷을 하는 데 정말 잘 치시더군요.

걸음도 얼마나 빠른지.국가대표 경보선수들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어떻게 앞팀을 따라잡나 하는 초조와 긴장 속에 우리팀 아저씨 차례.티잉그라운드에 티를 꽂고 뭐가 마음에 안드는지 이리 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티를 다시 꽂는 거예요(앞팀은 이미 그린에 당도).기나긴 어드레스 끝에 친 볼은 왼쪽 산속으로 직행.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군요.

레이디티에 선 아저씨의 사모님.누가 부부 아니랄까봐.어드레스 또한 어찌 그리 똑같은지.방향체크 두 번,연습스윙 두 번.근데 모조리 이상한 방향으로 가더라고요.

전반을 끝내고 앞팀 언니를 만나니 눈물이 나올 것 같더군요.

"언니,우리팀 진행이 너무 느려" 그러자 앞팀 언니는 "그래! 내가 혼내줄까?" 이래서 우리는 서로 짜고 연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앞팀 언니는 두 눈을 부라리며 큰 목소리로 "야,너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진행을 그 따위로 하는 거야.그것도 파5홀을 텅텅 비워놓고 다니면 어떻게 해?" 저는 눈물 흘리는 시늉을 하며 "언니,미안해요" 그러자 언니왈 "너 후반에도 그러면 각오해" 연기 죽이죠.

놀란 손님들이 뛰어오시더니 "언니야,무슨 일이야? 왜 그래?"하고 묻는 거예요.

저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네,홀 비워놓고 다닌다고…"라며 우물우물 대답했죠.그러자 흥분한 손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뭔가 중얼중얼…,소곤소곤… 긴급회의를 하는 거예요.

이후 손님들은 티샷을 끝내자마자 아이언과 피칭을 꺼내들고 일제히 뛰기 시작하더군요.

토핑이나 OB가 나건 뒤땅을 치건….무조건 치고 뛰더군요.

사모님은 아예 볼을 가지고 뛰더니 1백50야드 말뚝 옆에서 치시더라고요.

앞팀이 그린에서 깃대를 뽑고 있는데 우리 손님들은 그린 주위에 모두 몰려들어 앞팀의 퍼팅광경을 턱을 괴고 노려보았지요.

앞팀 손님들이 모두 놀라 퍼팅도 하는둥 마는둥 하며 서둘러 홀아웃을 하시더군요.

우리 손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짜낸 앞팀 언니에 대한 복수였지요.

연기에 너무 잘 속아 죄송할 정도였지만 무척 고마운 손님들이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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