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응용소프트웨어임대(ASP) 사업을 위해 작년 3월 창업한 P사.

이 회사는 서울 테헤란로에 70평짜리 사무실을 얻어 화려하게 출발했다.

자본금 5억원은 모두 사채업자들로부터 엔젤투자 명목으로 받았다.

K사장은 사업 아이디어만으로 50%의 지분을 인정받았다.

곧이어 인터넷 공모로 자본금을 10억원이나 더 유치했다.

여윳돈이 생기자 벤처투자에도 나섰다.

회사가 커지면서 돈을 댄 사채업자들이 사사건건 간섭하기 시작했다.

경영이 제대로 돌아갈리 없었다.

결국 작년말 핵심 엔지니어들이 떠나면서 이 회사는 지금 문을 닫을 지경이다.

소프트웨어 전문서비스 업체인 M사.

D사장이 1억원을 대고 벤처캐피털로부터 2억원을 투자받아 작년초 출범했다.

투자를 더 받을 수도 있었지만 꼭 필요한 만큼만 받은 것.

M사는 지난해 하반기 2차 자금유치를 추진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D사장은 투자유치 전략을 수정해 기술신용보증기금의 문을 두드렸다.

M사는 여기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무담보로 2억원을 융자받았다.

연리 8.5%, 5년 분할상환의 호조건.

일단 숨통은 트였지만 M사는 허리띠를 더 졸라맸다.

사옥을 서울 테헤란로에서 문정동으로 옮겨 임차비용을 3분의 1로 줄였다.

D사장은 "앞으로 추가 펀딩을 못받더라도 내년말까진 버틸 수 있는 계획이 서 있다"고 말한다.

<> 자금전략을 짜라 =P사와 M사의 사례는 벤처기업이 자금을 어떻게 조달해 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지금같은 자금난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생명줄과 다름 없는 자금을 어떻게 관리해야 벤처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전략을 강조한다.

"창업 이후 성장단계별로 언제 어디에서 얼마만큼의 돈을 끌어 들일지 계획부터 짜야 한다. 그런 전략이 있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이가 곧바로 성패를 좌우한다"(문선목 비즈하이 사장)

실제로 전략없이 자금의 성격과 규모를 불문하고 투자를 유치했다가 낭패를 본 기업은 P사만이 아니다.

벤처기업의 경우 코스닥 등록때까지 대개 세번의 자금수혈이 필요하다.

이때 자금의 용도와 규모에 맞는 가장 적합한 돈을 끌어 들여야 한다.

무조건 많은 돈을 유치하는게 능사는 아니다.

필요하지도 않은 돈이 생기면 "위험한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기술개발 등 기업가치를 높이는 일보다는 "돈놀이"에 더 몰두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자금난이 심각한 상황에선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적지않은 컨설턴트들은 직접 투자유치 대신 융자자금에도 눈을 돌리라고 말한다.

특히 정보화촉진기금 등 정부의 각종 벤처지원 정책자금은 이자도 싸고 상환기간도 길기 때문에 지원 계획 등을 미리 체크해 준비를 해두라고 귀띔한다.

<> 고정비부터 줄여야 =벤처에선 자금조달도 조달이지만 어렵게 끌어들인 돈을 어떻게 쓰느냐도 중요하다.

여기서도 면밀한 계획은 필수다.

사용목적과 시기에 따라 적절히 자금을 배분하고 운용해야 한다.

그 계획을 짤때 염두에 둘건 "선택과 집중" 원칙.

"연구개발 등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 외의 모든 부문에서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특히 사무실 임대료나 인건비 등 고정비용은 최대한 줄여야할 대상이다"(김한섭 KTB네트워크 상무)

더구나 지금처럼 벤처기업의 옥석가리기가 부각된 시점에선 연구개발과 마케팅 등 기업 내실을 다지는 쪽에 자금을 주로 써야 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6개월안에 자금압박이 예상되는 기업이라면 지금 당장 사무실부터 임대료가 싼 곳으로 옮기라고 김 상무는 충고한다.

M사는 이같은 방법으로 고정비를 크게 줄였고 자금운용에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한 창업투자회사 사장은 "벤처기업이 비싼 빌딩에 호화스런 사무실을 갖고 있는 것은 투자심사때 오히려 감점요인"이라고까지 말한다.

외화내빈(外華內貧)에서 벗어서 거품을 확 빼라는 주문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는 말은 자금운용에서도 예외가 아닌 셈이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