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에 의한 회사채 인수지원 문제가 통상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사가 "현대전자 회사채를 정부기관인 산업은행이 인수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미의회와 무역대표부(USTR)에 대응방안 마련을 요청했다는 소식이다.

산은이 현대전자의 회사채를 사주는 것은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기업에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을 금지한 WTO 규정에 위배된다는 것이 마이크론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마이크론측의 이런 주장은 경쟁사 지원에 대한 사전 견제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산은에 의한 회사체 인수지원제도 자체는 장기간에 걸친 회사채시장 마비로 기업 연쇄도산을 막기 위한 한국정부의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점은 마이크론측도 충분히 알고 있을 터이고,이는 WTO 규정에도 문제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영과정에서 특정기업을 대상으로 상업적 기준에 비해 유리한 혜택을 준 결과가 초래된다면 이는 WTO 규정위반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이 문제는 WTO 보조금 규정 이전에 이미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형평성 시비와 직결돼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지원대상 선정기준으로 제시된 ''회생 가능한 기업중 일시적인 유동성 확보에 문제가 있는 기업''은 너무나 막연하고,특히 1차로 선정된 6개 기업이 무슨 기준으로 선정됐는지는 더 더욱 불분명하다.

이러다 보니 회사채 차환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기업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울러 적용금리도 매우 예민한 문제다.

정부에서는 전날의 공모사채금리(1년미만 만기)에다 0.4%의 가산금리를 적용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나 논란의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지원대상 기업이 그만한 금리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면 보조금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은에 의한 회사채 인수지원 제도는 시장원리로 보나 구조조정 측면으로 보나 분명 바람직한 제도는 아니다.

하지만 회사채 시장이 마비돼 있는 상황에서 투기채 등급을 준국채화함으로써 기업도산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정부는 회사채 인수지원에 있어 객관적인 기업선정 기준을 마련하고 신용등급에 따른 시장금리를 적용함으로써 형평성 시비나 통상마찰 소지를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