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벌어지고 있는 산업은행의 현대전자 회사채 인수 논란의 핵심은 경제학적으로 보면 ''시장의 실패'' 문제로 귀착된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회사채 인수가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조치''라는 입장인 반면 일각에선 ''시장을 왜곡시켜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장 실패''(Market Failure)는 시장이 자원의 최적 배분이라는 과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상황을 뜻하는 경제학 용어다.

시장실패는 독점 등 경쟁적 시장이 확립돼 있지 않을 경우, 공공재 등 재화성질상 시장에 의해 효과적으로 공급되기 어려운 경우 등에 나타난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은 시장만으론 경제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에 관여하는 계기가 됐다.

이때 나온게 대대적인 부양책이었던 ''뉴딜정책''이다.

정부는 산업은행이 현대전자 등의 회사채를 인수하게 된 것은 바로 기업자금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회생가능성이 있는 기업까지 무너질 위기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재정경제부 최중경 금융정책과장은 "채권시장 인프라 구축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며 "회사채 시장이 마비된 상태에서 산업은행을 통한 회사채 인수는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제도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지금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비상상황이며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지난 72년의 8.3 사채동결조치 전에도 기업들은 자금시장이 제대로 돌지 않아 위기에 몰렸었다"며 "사채동결조치 이후 신용금고법 단기금융회사법 기업공개촉진법 등이 생겨 시장이 제대로 작동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가 오히려 정부 실패를 조장할 뿐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정운찬 서울대교수(경제학)는 "부실기업은 망한다는 원칙을 확립해야 할 판에 구조조정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을 내놓았다"고 비판했다.

오규택 중앙대교수(경영학)도 "이는 정부가 공공자금을 기업에 직접 주는 포장만 달리한 공적자금"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의 배경에는 정부의 시장 개입이 지나쳐서 정부에 의한 민간지배와 비효율이 나타나는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라는 개념이 깔려 있다.

불완전한 정보에 기초한 정부의 근시안적 규제, 정경유착, 관료집단의 이기주의 등으로 시장실패보다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현대전자가 부도나면 회사채 차환발행을 도와 경영을 정상화시키는 것보다 사회적 비용이 훨씬 많이 들 것"이라며 "다만 현대측의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현철 기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