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임상병리센터나 한의원에서 혈액형만으로 각종 성인병과 암을 검진할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건강상태에 따라 적혈구의 모양이 변형되기도 하고 이상징후를 반영하는 항원이나 단백질이 혈액속에 나타나기 때문에 이 검사는 어느 정도 의학적 설득력을 지닌다.

하지만 현재의 의학수준으로는 혈액검사만 가지고 질병에 대해 흡족할만한 진단 정확도를 확보하기는 어렵다.

혈액진단의 실체에 대해 알아본다.

[ 도움말=지현숙 울산대 서울중앙병원 임상병리과 교수,강희정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임상병리과 교수,김형일 서울메디칼랩원장 ]

<>종양표식자를 이용한 암진단=암에 걸리면 혈액에 이상징후를 반영하는 항원물질이나 단백질이 발생한다.

거꾸로 암을 억제하는 생체물질이 감소한다.

이런 물질을 종양표식자라 한다.

현재 종양표식자는 암의 종류에 따라 수개 또는 수십종류가 발견되고 있다.

종양표식자를 이용해 암을 진단하면 조직검사를 하는 것에 비해 시간이 적게 들고 환자가 편하다.

암의 종류,전이 여부,치료효과 판정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종양표식자가 검출 또는 증가했다고 해서 1백% 암이 있다고 볼수는 없다.

이런 징후가 혈액검사로 나타났을 경우 조직검사를 통해 실제 암으로 확진되는 경우는 적게는 20,많게는 90%정도다.

또 악성이 아닌 양성종양이 생겼을때도 종양표식자의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오진할 소지가 있고 공연히 환자의 근심만 부추길 수 있다.

게다가 종양표식자 가운데 상당수는 암이 한창 진행된 후에야 의미있는 수치변화를 나타내므로 암의 조기진단에 그리 유용하지 않다.

암을 종합적으로 검진할 경우 30만~40여만원이 들고 특정 암을 집중 검사할 경우에는 한가지 암 종류당 50만원 이상의 검사비용이 든다.

일반적으로 혈액을 이용한 암진단은 암마다 한두가지 정도의 종양표식자가 나오는지를 판독한다.

위암 간암 폐암 등은 진단정확도가 떨어지는 반면 자궁암 유방암 등은 상대적으로 높다.

이에 대해 김형일 원장은 "문진에 의해 가능 발생한 암을 예측하고 이에 대해 다양한 종양표식자 검사를 실시한다면 고가의 CT(컴퓨터단층촬영)와 MRI(자기공명영상촬영)에 못지 않은 진단효과를 얻을수 있다"고 설명했다.

CT의 경우 종양이 5mm 이상은 돼야 인식할수 있기 때문에 조기진단 수단으로 미흡하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DNA칩을 이용한 암진단=최근의 생명공학 붐으로 DNA칩을 이용한 암 검진도 머지않아 등장할 전망이다.

DNA칩은 수십 수백종의 암 유전자를 칩에 심은 것으로 유전자 이상이 밝혀진 암의 조기 진단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유전자 이상 여부도 알수 있다.

그러나 유전자 이상이 밝혀진 암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흔한 위암 간암 폐암의 경우 특징적인 유전자 이상을 보이지 않는다.

가격도 한가지 암을 검사하는데 수십만~수백만원이 들 것으로 보여 실용화는 아직 요원하다.

더욱이 너무나 많은 검사데이터가 나와 이를 판독하는데도 적잖은 어려움을 겪을수 있다.

<>건강상태와 혈액상태의 변화=일부 한의원에서는 만성피로 대사장애 순환장애 면역력저하 어혈(탁한 피의 뭉침) 담음(흐린 체액이 뭉침) 등이 적혈구에 나타난다고 해서 현미경으로 혈액을 검사해서 건강상태를 진단하고 있다.

실제로 건강에 이상이 있으면 적혈구의 모양이 변형된다.

예를 들어 만성간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적혈구가 표적모양으로,만성신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규칙적인 돌기를 표출하는 모양으로 변형된다.

그러나 웬만한 질병에서는 적혈구의 모양이 변하지 않는다.

감기 같이 흔한 질병은 물론 암에 걸린 환자도 적혈구 모양은 대부분 극히 정상인 경우로 나타난다.

피의 색깔로 건강상태를 판단한다는 것도 근거가 희박하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의 피는 붉은 색을 띤다.

동맥피는 밝은 적색,정맥피는 동맥피에 비해 좀 더 어두운 적색을 띤다.

일반적으로 피검사를 할때는 정맥피를 뽑기 때문에 혈액 색깔로 건강상태를 판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폐질환 또는 심장질환으로 인해 몸에 충분한 양의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경우에는 동맥피를 뽑아서 검사하게 되는데 이때 동맥피가 검붉다면 피에 충분한 양의 산소가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생식을 하면 피가 맑아진다는 것도 의학적으로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