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의 중심은 경제 살리기에 있었다.

4대 부문 개혁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한 구조조정만이 문제해결의 핵심이며 경기부양은 구조조정의 보완 조치에 불과함을 밝혔다.

거시적인 진단은 대체로 올바른 방향으로 잡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처방을 여하히 효과적으로 시행하느냐에 경제복원의 성패가 달려 있다.

IMF체제 이후 3년 동안 정부는 입만 열면 구조개혁을 외쳐왔지만 일관된 정책의지의 결여로 올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까지 구조조정이 그 중심적 실천과제로 또다시 등장하고 있어 가슴 아프다.

그간 4대 부문 구조조정의 과제가 왜 효과적으로 실행되지 못했는지를 부문별로 그 원인을 면밀히 파악해 다시는 시행착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데 최대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개혁부진의 총체적 원인은 무엇보다도 IMF체제 이후 정부 스스로 경제회복에 대한 과신과 낙관에 빠져 구조조정을 게을리 한 탓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약속한 정책의 미흡한 실천 내지는 잦은 정책 변경이 모든 경제 주체들로 하여금 정책에 대한 신뢰를 반감시켰고 집권전반기 경제개혁을 실패로 귀결시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2차 기업 구조조정이 실패하거나 미진했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단기간에 부실징후 기업들을 몰아치기 방식으로 퇴출시켜,일시퇴출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를 의식하게 됐다는 점이다.

일시퇴출에 따른 부작용의 고려는 대상기업 수를 줄어들게 했고,부실기업의 정리보다는 구제 내지는 연명으로 이어져 공적자금만 남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구조조정에서 무엇보다 준수돼야 할 사항은 예외없는 원칙의 준수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시한을 설정해 ''언제까지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는 등의 약속은 앞으로 가급적 자제돼야 할 것이다.

작년 말까지 금융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올 2월까지 4대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국민들로 하여금 일시적 희망을 불어넣기보다는 정책의 신뢰도나 대외신용도를 약화시켜 장기적으로는 정책의 불신을 낳고 그 효과를 반감하게 된다.

특정시한에 쫓겨 진행된 구조조정은 무리한 실적에 치중하기 십상이며,이는 시장원리에 배치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국민들의 불신이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경제외적인,특히 정치적 동기에 의해 정책이 수시로 변경되고 이에 따른 정책의 일관성 결여가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을 유발하고,종국에는 정책의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4·13 총선으로 구조조정이 지연되거나 미흡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음을 정치인들은 물론 정책담당자들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한빛 등 6개 은행에 대한 완전감자 조치는 대표적 정책불신 사례임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감자는 없다''라는 정책 책임자의 호언이 하루아침에 바뀌었고,대다수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이 4%라고 공시했던 한빛은행이 어떻게 두달만에 0%로 낮아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정책당국의 말바꾸기가 주기적으로 일어났으며 이러한 시행착오가 오늘날 우리 경제의 현 주소임을 웅변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와중에 국민의 성원 아래 출범한 국민의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다.

신뢰회복의 첩경은 개혁의 지속적 추진에 달려 있다.

그러나 개혁이 장기적으로 정착되도록 제도화시키는 것은 개혁의 결단보다 더 어려운 과제다.

개혁의 결단은 고독한 결정이고 때로는 독선이 용납되는 지도자의 몫이지만,개혁의 정착은 개혁의 목표뿐만 아니라 개혁추진과정의 형식과 세부적 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출의 성과에 달려 있다.

경제개혁 또한 단기간에 선진국 수준의 제도개선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정한 개혁이라면 첫 걸음이 크지 않아도,시끌시끌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개혁의 숨결을 국민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mwlee@mail.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