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연출 김종선,극본 이환경)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주초 직장 남성들 사이에는 주말의 방영내용이 대화의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심지어 드라마 내용을 모르는 경우 술자리 대화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진풍경까지 빚어진다.

L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S씨는 최근 술자리에서 낭패를 봤다고 털어놓는다.

"왕건이나 궁예는 귀동냥으로 들어서 알지만 아자개나 종간 수달 등이 소재로 등장할땐 도통 무슨 말인지 몰라 꾸어 온 보릿자루처럼 술잔만 기울였어요"

K통신업체의 영업팀 P부장은 ''태조 왕건''을 통해 자신의 조직관리스타일을 돌아보는 경우."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궁예의 관심법은 단기적인 효과는 거둘 수 있지만 결국 조직의 가장 핵심인 커뮤니케이션을 와해시키는 얄팍한 술책입니다.

궁예를 보면서 새삼 부서내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남성 시청자층에 힘입어 최근에는 시청률 40%대를 돌파하며 국내 프로그램의 지존자리를 확고히 다져가고 있다.

''태조 왕건''이 인기를 끄는 이유로 후삼국시대 영웅들의 선굵은 이야기를 그린 남성드라마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불륜 사생아 삼각관계 등 천편일률적인 소재에 질려있는 남성시청자에게는 사실감 넘치는 전투신만으로도 시선을 끈다.

그러나 무엇보다 드라마속에 투영된 현실의 모습이 남성시청자에게는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미륵을 자처하며 동방의 대제국을 꿈꿨던 궁예의 좌절,유약함속에 웅대한 포부를 숨긴 채 때를 기다리던 왕건의 인내와 용인술,호랑이보다 용맹스럽고 호방하나 왕도의 기본인 제가(齊家)에 실패한 견훤,이 세 영웅의 모습에서 처세와 역사의 교훈을 절로 곱씹게 된다.

삼국지의 조조 유비 손권,일본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비견될 만한 인물들이 드라마를 통해 부활한 것이다.

궁예 역의 김영철의 강력한 카리스마 연기도 인기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드라마 초반 "28년 연기인생을 걸고 도전해보겠다"고 공언하며 연기열을 불태웠던 그는 지난해말에는 생애 처음으로 연기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했다.

작가 이환경씨는 "승자의 기록인 정사만을 따라간다면 오히려 드라마의 의미가 반감됐을 것"이라며 "현재 국내 정치상황과도 흡사했던 후삼국시대에 세 영웅이 펼쳤던 대결과 화합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84회까지 방송된 ''태조 왕건''은 오는 3월께 궁예의 죽음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당초 오는 9월말 종영예정이었으나 왕건의 활약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올 연말까지 연장,방영할 계획이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