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어릴적 잠자리채를 들고 들녘을 뛰어다니던 유년시절의 아련한 기억을 하나둘쯤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그런 잠자리가 무슨 자연다큐멘터리 소재가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EBS가 16일 방송하는 특집 자연다큐멘터리 ''잠자리''(오후 9시55분)는 너무나 흔해 하찮게 여기던 곤충의 생태가 화려한 동물의 세계 못지않게 오묘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카메라맨으로 자연다큐멘터리에 입문했다 연출까지 맡게 된 ''카메듀서'' 이의호씨가 전남 곡성 일대의 늪지에서 6개월간 공을 들인 작품이다.

잠자리는 백만종에 달하는 곤충 가운데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곤충이다.

공룡과도 함께 살았던 ''우리시대의 살아있는 화석''이나 다름없다.

물속에서 1년 이상 애벌레로 사는 잠자리는 천적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물 밖 세상으로 나와 성충으로 변한다.

이 가운데 30%만이 살아남아 첫비행을 한다.

잠자리는 전진후퇴는 물론 급회전,정지비행도 가능하다.

최고비행속력은 시속 98㎞,눈은 2만여개의 낱눈으로 이뤄져 있어 미세한 움직임까지 감지할 수 있다.

마치 날렵한 전투용 헬리콥터를 연상시킨다.

잠자리의 짝짓기는 어느 곤충 못지않게 치열하면서도 화려하다.

암컷이 자기 영역권내에 들어오면 암컷의 의사와 관계없이 납치하다시피 짝짓기를 시도하는 수컷잠자리의 몸짓은 종족보존을 위한 생명의 본능.

이 가운데 물잠자리는 가장 우아하고 화려한 몸짓으로 구애를 하다 하트형 자세로 교미를 시도한다.

짝짓기를 마친 잠자리는 저공비행을 하며 수면에 알을 뿌리고 이때 수컷은 암컷이 안전하게 알을 산란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경호비행을 한다.

간혹 자동차 유리에 산란하는 잠자리를 볼 수 있는 것은 잠자리가 유리창을 수면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알은 보름 만에 애벌레로 변신하고 종족번식의 의무를 마친 어른잠자리는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즈음 물가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 PD는 "주변에서 하찮게 여기는 잠자리지만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이라는 인식을 통해 현대인에게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자극이 됐으면 한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