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 이노디자인 대표 >

나는 회의를 할 때나 식사 모임의 경우 사각 테이블보다는 원탁을 선호한다.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으면 건너편과 바로 옆 사람은 물론 양옆으로 멀리 앉은 사람까지 모두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말을 시작할 수도 있다.

토론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에 적합한 대형이다.

한국 기업들은 보통 기다란 사각형 책상을 회의실용으로 선호한다.

그런 회의실엔 대개 회장 사장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때로는 의자 모양새까지도 다르다.

상좌가 정해지면 이어 직급 순서대로 참석자 자리가 정해진다.

의견의 발표도 직급별로 진행된다.

회의 광경은 아주 엄숙하고 딱딱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를 놓고 토론하기보다는 지시나 보고하기에 적합한 대형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문제에 직면한다.

다양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풀어나가면 성장하는 기업이 될 것이요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고 만다.

문제를 푼다는 것은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찾아내어 대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광의로 보자면 이 문제를 푸는 과정이 바로 디자인이다.

묵은 얘기지만 디자인이 곧 문제해결의 과정이라는 정의는 "만인이 곧 디자이너"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문제 해결의 과정은 당연히 전문성을 가진 다양한 시각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측면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은 해결점을 찾는데 필수적이다.

열심히 보아도 문제를 찾아내지 못하는 기업은 동일한 시각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제품은 결국 시장에서 들러리를 설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디자인 경영은 원탁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원탁 위에 물건을 올려놓고 함께 둘러앉아 보듯이 제품이나 기업의 문제를 한 가운데 올려놓고 다양한 시각을 갖는 여러 전문가들이 동시에 쳐다볼 수 있다면 문제 해결이 정확하고 신속해진다.

결코 기획 디자인 엔지니어링 마케팅 등이 긴 사각 테이블에 일렬로 앉아 릴레이를 하듯 일을 진행하고 결과를 보고 나서야 서로 왈가왈부하는 꼴이어서는 안된다.

동시공학(concurrent engineering)이나 다기능팀제(cross-functional team)를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속하고 정확한 문제 해결 외에도 원탁의 또 다른 장점은 적극적인 참여 의식을 불어넣게 된다는 점이다.

참석자 모두가 공평한 대우를 받기 때문에 의견교환이 활발해진다.

따라서 참석자들은 자신이 맡은 일 뿐만 아니라 전체를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상호 협력적인 분위기 속에서 문제를 풀게 된다.

필자는 요즘 인터넷 상거래 중에서 "C-커머스(Collaboration Commerce)"에 큰 매력을 느낀다.

미리 정해진 주종관계를 통해 판매자와 구매자가 가치를 교환하는 e-커머스보다는 참여자들의 상호 협력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C-커머스가 인터넷 시대에 진정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e-커머스가 마치 긴 사각 테이블에 일렬로 앉아 차례로 일하는 것이라면 C-커머스는 원형 테이블에서 함께 의논하며 협력하는 모습과도 같다.

모든 협력자들이 동시에 일을 지켜보면서 각자 맡은 부분의 역할을 다하기 때문에 진행과정이 보다 명백하고 모두의 의견을 종합할 수가 있다.

종래처럼 각 단계가 별도로 진행되어 초반 과정의 참여자가 중반과 후반 과정에 제외되거나 무관심하게 되는 일도 없다.

따라서 C-커머스는 개발과정 중에 어떤 변화나 문제가 발생해도 추가로 시간을 소비할 필요없이 모든 참여자들이 변화의 내용을 동시에 파악하고 상호 협력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단계를 단축시킬 수 있다.

이젠 기업의 규모에 상관없이 급변하는 환경 속의 벤처기업들에는 모든 의사결정이 명백하고 빠르게 이루어져야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올해에는 상호협력 시대에 걸맞게 회의실 가구를 원탁형 테이블로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ceo@designato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