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예산 불법지원 사건도 결국 ''그렇게'' 막을 내리고 있다.

서슬 퍼렇던 검찰의 당초 다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의혹''은 국민들의 상상에 맡겨졌다.

남은 것은 불신 뿐이다.

검찰의 느닷없는 변화에 놀란 것은 정작 기자들이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정치자금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를 외치던 지난 16일 오전 대검 차장실에서 기자실로 전화가 왔다.

평소 사건 브리핑을 하지 않는 신승남 차장이 이번 사건에 대해 간담회를 갖겠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은 당연히 ''정치인 줄소환''을 상상하며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안기부 예산을 받은 정치인을 수사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정치인들은 모르고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법률적으로 범죄혐의가 없다는 것이다.

''국기문란''이라던 검찰총장의 말은 불과 1주일만에 완전히 뒤집혔다.

국민의 세금을 빼돌려 정치자금으로 썼을 뿐 아니라 일부 인사는 개인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게 총장의 발언이었다.

''성역이 있을 수 없다''는 강조도 붙었었다.

더군다나 대통령까지 ''철저한 수사''를 강조한 터였다.

1주일만의 번복에 어안이 벙벙해 진 것은 기자들 뿐이 아니다.

일반 시민들이 더했다.

''리스트''까지 공개되고 명단에서 빠졌던 인사들이 속속 확인되는 마당에 조사하지 않겠다는 까닭을 알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뒤 혼란은 더 심해졌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특검 실시와 전면수사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리스트에 무더기로 이름이 올라 있고 주동자에 체포동의서가 발부된 마당에 전면수사를 촉구하는 장면이 납득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뿐 아니다.

이번엔 민주당까지''성역없는 수사''를 요구하고 나섰다.검찰과 ''한 집안''인 여당이 검찰과 상반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 ''그렇고 그런'' 시늉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 와중에 국민들만 바보가 됐다.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는 검찰이나,방탄국회와 쓸모없는 청문회로 날새는 정치인들에게 눈가림당하고 있는 것은 백성들 뿐이다.

김문권 사회부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