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 연세대 경영학 교수 >

눈은 아마도 춥고 지루한 겨울날 우리를 가장 즐겁게 해주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세상이 조금은 조용해지는 것 같고,유유히 떨어지는 눈발은 마음마저 평온하게 해준다.

지금도 창 밖으로 보이는 기와지붕 위의 눈은 낭만을 불러 일으킨다.

얼마전 서울과 전국에 많은 눈이 내렸다.

아이들은 참 좋아했다.

모처럼 눈사람을 만들며 기뻐했던 어른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바삐 움직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날 벼락''이지 않을 수 없었다.

발이 묶여 일을 보지 못한 것은 그래도 양호한 경우다.

사고로 인해 크고 작은 재산피해를 본 사람이나,눈길에 넘어져 다친 사람은 얼마나 많았을까.

더구나 눈이 온지 여러 날이 지난 지금까지도 온몸에 힘을 주어가며 얼음으로 뒤덮인 길을 조심스레 걸어 다니는 우리의 모습은 초라하기까지 하다.

미국 뉴욕주의 한 중소 도시인 버펄로는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하다.

그곳에서는 눈이 대개 10월께부터 오기 시작해 이듬해 4월까지 계속된다.

연간 적설량은 무려 2백50㎝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이곳 주민들이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위해서는 눈을 제대로 치우는 것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개인과 상인들은 자기 집과 가게 앞의 길을 치우는 것이 당연시 되어있다.

왜냐하면 눈을 치우지 않을 경우 그곳을 지나는 행인들에게 큰 불편을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또 누군가가 피해를 볼 경우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시 정부에서도 크고 작은 모든 도로에 대한 제설작업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것이 주민들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구사항이기 때문이다.

버펄로시 시장의 당락은 재임중 눈을 얼마나 잘 치웠는가에 달려있다는 얘기까지 있다.

아무튼 이곳에서는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빙판 길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재미난 것은 버펄로시 제설 전문가들의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받으려고 다른 시에서 이들을 초빙해 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눈을 잘 치우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눈이 그다지 많이 오지 않는 우리 나라에서는 사회적으로 이 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시민들의 생활에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에 대해서만은 철저한 역량을 갖추어 놓는 버펄로시의 모습이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동안 어려운 경제 여건 하에서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왔다.

정부 정책,기업합병,구조조정 등과 같은 거시적 관점에서의 논의가 특히 많았다.

물론 중요하고 필요한 얘기들이다.

정부로부터의 합리적이고도 일관된 정책 제시는 특히 중요할 것이며 기업의 군살 빼기와 비효율성 제거 또한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경쟁력 강화의 문제는 이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미시적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즉 기업의 경쟁력은 결국 시장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에 충실히 부응할 수 있는 역량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뼈아픈 구조조정과 혁신을 통해 거듭나게 된 외국의 많은 기업들을 봐도 그렇다.

이들이 거친 변화 과정은 제각기 다를지 모르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예전에 하던 수준을 보다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정도에 그치지는 않았다.

자신을 변화시켜 시장욕구 충족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을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고객들도 그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고,정보기술의 발달로 그들을 만족시키는 방법 또한 하루가 다르게 다양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기업은 변화하는 시장의 욕구를 민감하게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을 키워야 하며,이러한 요구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진정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는 기업이 시장을 두려워하고 고객의 선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체질을 가질 때만이 가능하다.

다음 선거를 걱정하는 버펄로 시장같이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의 본질이고 궁극적인 목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dhkim@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