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등학생들에게 1월은 잔인한 달이다.

대학 입시 때문이다.

대학 입시가 그 자체로 잔인하다고 할 수는 없다.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현실이 입증하고 있다.

문제는 경쟁이 합리적이고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수능 시험이 너무 쉽게 출제돼 변별력을 상실했다는 논란은 지나치기로 하자.

내가 보기에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데 있다.

시험은 지식을 묻는 방식중의 하나다.

좀 더 엄격하게 말하면 지식의 체득을 묻는 방식중의 하나다.

그런데 지식의 체득을 어떻게 물을 것인가?

다양한 방법들이 있을 수 있다.

지식을 갖는 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선 지식은 축적된다.

망각의 힘을 뚫고서 얼마나 지식의 양을 확보하고 있는가를 물을 수 있다.

그럴 때 지식은 소유의 대상이 되고, 지식을 묻는 일은 답을 묻는 일이다.

단답형 문제나 선택형 문제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다음, 지식은 구성된다.

순수하게 축적되기만 하는 지식은 실제로 없다.

어떤 지식도 사람의 두뇌 속에 저장될 때는 나름의 방식으로 ''구성돼 저장''된다.

가령, 김소월의 ''산유화''를 외운다 치자.

학생은 나름대로 이 시를 해석하면서 외운다.

일제 식민지 현실과 연관시켜 해석할 수도 있고,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을 읽을 수도 있다.

이 때 지식은 이해의 대상이고, 이해된 지식은 바깥 세상과 인간이 만나는 접면으로서의 몸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지식을 묻는 일은 세상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의 수준을 묻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식은 변용된다.

지식이 학생의 두뇌 속에서 창의적으로 재구성된다면, 그 때 지식은 다른 지식에 대한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어떤 지식이든 완벽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지식의 획득은 지식의 결핍에 대한 자각이다.

''내가 무엇을 아느냐''는 몽테뉴의 회의는 무지의 자백이 아니라, 지식의 원천적 개방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쨌든 이 때 지식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이해의 대상이기를 넘어서서 창조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지식을 묻는 일은 답을 묻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능력을 묻는 것이다.

질문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기존의 대답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편할 수 있다.

지금의 오지선다형 수능 시험방식은 지식의 축적만을 묻는다.

이것은 지식을 제대로 묻는 것이 아니다.

혹자는 반문하리라.

선택의 방식은 또 구성의 능력을 묻는 일이 아니냐고?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저급의 구성 능력을 묻는 것이다.

이리저리 정황을 따져 가며 답이 아닌 것들을 배제해 나가는 능력,
요컨대 잘 때려 맞추는 능력을 묻는 것이다.

혹자는 다시 말하리라.

논술이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지금 논술은 지식을 묻지 않는다.

그것은 처세를 묻고 품성을 묻는다.

그 어려운 지문들을 가지고 논술 문제가 요구하는 것은 한결같이 중용의 자세를 취하는 능력이다.

또 다시 혹자가 말하리라.

학생부 기록이 그걸 해결해 주지 않느냐고.

그러나 학교 시험도 근본적으로 수능과 다를 바가 없다.

교과서든 참고서든 열어 보라.

모두 하나의 대답만을 강요하고 있다.

도대체 하나의 문제에 대해 하나의 정답이 있다는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가당한 일인가?

그래서 나는 강하게 권고한다.

본고사를 보든, 학교 시험을 그렇게 바꾸든, 논술로 시험을 보자.

다시 말해 지식을 묻되 그것을 논술의 형식으로 쓰게끔 하자.

학생은 자신이 축적한 지식을 글쓰기를 통해 재구성하면서 그것을 삶에 대한 질문으로 바꿔서 나타낼 수 있다.

한국 교육은 의도적이었는지는 몰라도 항상 미국의 교육 제도를 모방해 왔다.

그런데 유일하게 모방하지 않는게 있는데, 그것은 미국의 학교는 고교에서도, 모든 공부가 ''에세이 쓰는'' 것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영어든 수학이든 사회든.

그러니까 모방을 해도 좋은건 다 빼고 한다.

옛날에는 우리도 그렇게 했었는데 왜 실종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circ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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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서울대 불문과 졸업, 서울대 국문학 박사
△연세대 국문과 교수
△평론집 ''무덤 속의 마젤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