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실 기업의 상시퇴출 시스템을 구축키로 했지만 분기마다 이벤트성 퇴출판정을 하는 식으로는 오히려 경제불안 심리만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정부가 퇴출판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직접 개입, 은행의 자율적인 심사기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당초 금주중 발표하려던 퇴출판정 가이드라인을 다음주로 늦추고 재검토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은행에 직접 맡겨라"고 권고하고 있다.

◆ 원칙은 공감, 방법이 문제 =은행들도 부실 기업의 상시퇴출이 필요하다는데 이견이 없다.

이자조차 감당 못하는 부실 기업이 차입금으로 연명해선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금융 부실을 털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 실무자들은 "부실 기업을 은행이 소리없이 퇴출시켜야지 분기나 반기마다 사회 이목을 끌어가며 퇴출시켜선 부작용이 더 크다"고 입을 모은다.

퇴출 시점을 전후로 후보 기업들 전체가 불안에 떨면서 금융시장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상시퇴출 가이드라인을 작년 11.3 기업퇴출 때 적용했던 퇴출판정 기준에다 한두가지 요건을 추가해 제시할 방침이다.

당시엔 ''요주의'' 이하이면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 못하는 기업(3년간 이자보상배율 1미만) 등이 판정대상이 됐다.

여기에다 2금융권 차입금이 은행차입금의 80% 이상이면서 업종평균 부채비율을 웃도는 기업 등이 판정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그러나 11.3 판정에서 큰 기업이 퇴출되지 않았듯이 ''대마불사(大馬不死)''는 사실상 피하기 어렵다.

이는 퇴출기준이 문제가 아니라 경제파급 영향 등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 때문이다.

정기영 삼성금융연구소장은 "소규모 기업은 은행이 자체 판단으로 퇴출시키되 국가 기간산업은 퇴출시 공적자금이 필요하므로 차라리 정부와 채권단이 건별로 협의해 결정하는게 낫다"고 말했다.

◆ ''정부는 빠져라'' =전문가들은 상시퇴출에서 정부의 역할은 ''시스템'' 구축에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은행 자율에 제약이 있으면 상시퇴출이 또 ''전시행사''가 될 공산이 크다고 경고했다.

안영균 삼일회계법인 전무는 "상시퇴출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실제 운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안 전무는 "기업의 부실 신호가 수시로 나타나는데 은행이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게 문제이므로 어떤 기업이 부실한지 판단하는 주기를 단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가이드라인 제시가 불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곽창호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가이드라인이 많을수록 일이 꼬인다"면서 "여기에 정부 개입은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와관련, 은행이 대출심사위원회를 여러개 만들어 건별로 결정된 사항은 모두 면책하는 수준으로 은행의 대출심사 기능을 복원시켜야 상시퇴출 시스템이 가동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