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며 들떠있는 한국인 동료들을 보고 있으니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더욱 그립네요.

베트남에서도 이맘때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님께 제사도 지내고 선물도 주고 받곤 하죠"

경기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섬유염색업체 동환물산에서 일하는 베트남 출신 잔쿠위(25).

이국 타향인 한국에서 처음으로 설날을 맞는 감회를 이렇게 말했다.

코와 귀에 피어싱을 한 신세대 청년인 그에게도 고향의 가족은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휴가를 반납하고 일을 하고 싶지만 일감이 모자라 여의치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설연휴를 포함해 6일간 휴가를 받은 그는 겨울날씨만큼이나 쓰라리게 몰려드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설날인 24일 공단에 있는 베트남 친구들과 조촐한 파티를 열 생각이다.

"돈을 모아 전통음식을 만들어 먹고 베트남 대사관에서 보내준 베트남 전통술을 나눠마시며 밤새 고향 얘기나 할 생각입니다"

시화공단의 새한산업에서 일하는 조선족 동포 박광철(32)씨는 "중국에서도 설날은 연휴기간이 보름이나 될 정도로 가장 큰 명절"이라며 "그만큼 한국에 와있는 조선족 동포들이 느끼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화공단에 있는 인쇄가공업체인 정원산업의 사다니(30·인도네시아)는 일부 가족이 연수생으로 함께 한국에 와 있어 그리 쓸쓸하지는 않다.

아내와 남동생,여동생이 구미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사다니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23일 구미행 열차표를 끊어놨다.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국내에 취업해 있는 외국인 근로자 수는 지난해 말 현재 4만5천7백32명.

여기에 불법체류자 18만명(법무부 추정)과 2만여명의 외국인 전문인력을 포함하면 한국에서 올해 설 명절을 맞이할 외국인 근로자 수는 총 25만여명에 달한다.

외국인이라도 사정이 나은 전문인력들은 연휴를 이용해 직접 고국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족과 고향을 그리며 쓸쓸한 명절을 보낼 수밖에 없다.

산업단지공단 서부지역본부의 박종욱 과장은 "외국인 근로자들 대부분이 돈을 벌려고 와 있기 때문에 명절을 즐길 처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타국에서 명절을 맞는 이들을 위해 선교회 등 종교 사회단체들은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 구로동의 서울 조선족교회에서는 오는 24일 5백여명의 조선족들이 모여 순대와 만두를 빚고 장기자랑 등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이 교회 이철권 간사는 "그동안 남모르게 우리를 보살펴주신 후원자들을 초청해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질 계획"이라며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구의동의 서울선교교회는 22일부터 3일간 강화도 연동 수양관에서 신앙집회를 갖는다.

필리핀 몽골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온 3백여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에버랜드 롯데월드 등 놀이동산에서도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민속공연과 장기자랑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했다.

외국인근로자들에겐 연휴기간 동안 입장권 및 자유이용권을 50% 할인해 준다.

이 회사의 필리핀 출신 산업연수생 그레그(25)는 "장기자랑에 대비해 동료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한국에서 유행하는 춤과 노래를 연습했다"며 "상품을 받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꼭 전해드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