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여름.비가 장대처럼 쏟아지던 날 국문과 대학생 서인우(이병헌)의 우산속에 한 여자가 뛰어든다.

조소과 인태희(이은주).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지 않던 인우의 가슴속엔 태희의 존재가 커다랗게 자리잡는다.

가슴설레며 가꾸던 사랑은 남자의 군입대날 여자가 나타나지 않은 이후 두번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2000년 봄.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한 인우에게 반 아이들은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첫눈에 반했지"이야기가 끝나도 전에 말대꾸가 날아온다.

"첫눈에 반했다는건 그사람의 옷차림이나 말투가 좋다는 이야기잖아요"

기억의 저편에 잠겨있던 희미한 기억을 더듬게 하는 당돌한 말투.맨 뒷자리의 현빈(여현수)이다.

찬 손,미세한 몸짓,핸드폰벨 소리,무심코 그린 그림들...

현빈의 모든 것은 잃어버린 첫사랑의 기억을 한조각씩 되살리며 "태희"의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세상을 떠난 첫사랑 여인이 17년 뒤 남학생 제자로 다시 태어난다는 "번지점프를 하다"(감독 김대승.제작 눈 엔터테인먼트)는 "퓨전멜로"라는 낯선 소개말대로 여러가지 재료들이 뒤섞여 있다.

작품의 뼈대를 이루는 감성적인 로맨스는 윤회와 환생의 신비,미스테리적인 긴장감,동성애 코드등과 교배돼 전혀 새로운 멜로의 모양새로 거듭난다.

동성의 제자에게 애정을 느낀다는 점에서 한때 동성애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간절하고 아름다운 연기는 견고한 설득력을 확보하며 전례없이 독특한 사랑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예상을 뒤어넘는 결말도 짜릿한 전율을 안긴다.

이병헌은 놀랄만큼 자연스러운 연기로 관객을 끌어당기고 이은주도 발랄하고 신비로운 여대생의 이미지를 한껏 살려냈다.

신인배우 여현수의 호연도 돋보인다.

첫 사랑을 인지하는 과정이 확실하게 와닿지 않는다거나 여주인공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가 다소 평이하다는 등의 약점은 진부함을 벗어던진 신선한 감성으로 충분히 가려질 만 하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