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도권 지역에 할인점을 낸 S사 김진수 부장은 지난 3년간 속을 썩이며 지내야 했다.

할인점을 세우는데 필요한 각종 인.허가를 받는 일을 맡았던 그를 괴롭힌건 관할관청의 무리한 요구였다.

시청은 백화점을 지으라며 할인점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몇달을 그렇게 끌고서야 할인점 허가를 내주더니 지역 중소상인 피해 보상을 위한 지역발전기금 명목으로 5억원 상당의 기부금을 요구해 왔다.

김 부장은 "경기도 교통영향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친 사항이 시청 건축심의 과정에서 번복되는 경우도 많았다"며 "산업자원부가 할인점 건설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일선 지방자치단체에선 정반대였다"고 말했다.

또다른 유통업체인 A사는 할인점을 지으면서 지자체로부터 공사현장으로부터 3백m이상 떨어진 국도 2km의 포장사업비(약 30억원) 부담을 요구받았다.

B사는 8백평 규모의 토지를 기부채납하고 주변도로를 개설해 준뒤 허가를 받았다.

정부가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하면서까지 노력한 규제개혁에 대해 기업과 일반인들은 높은 점수를 주지 않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9월 3백46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인력, 안전.소방, 금융부문 등에 관한 "규제개혁 체감도 조사"에서 체감지수는 부문별로 40~53점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한국의 규제개혁은 초기단계"라고 평가했다.

과도한 정부 규제는 민간의 창의성을 억압하고 부정과 부패를 키워 국가경쟁력을 훼손시킨다.

체감 규제개혁 점수가 높지 않은 이유로는 우선 중복규제를 들수 있다.

전경련 조사에서도 실질적 규제완화를 위해 "관련법령의 통폐합 등 중복규제 축소(47%)"가 가장 시급한 것으로 꼽혔다.

기업이 사업장 안전관리자를 선임하려면 산업안전보건법 시설물안전관리특별법 등 무려 6개부처 16개 법률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구미에 2개의 공장을 갖고 있는 전자부품업체인 G사는 안전관리자 한사람에게 안전관리를 전담시켜도 되는데 법에 따라 사업장별로 각각 안전관리자를 두고 있다.

수도권에 공장을 지으려던 S사는 건설교통부의 수도권 공장건축총량제에 걸려 몇년을 허비했다.

공장총량제는 건설교통부 장관이 수도권의 시.도별 공장건축허가 물량을 사전에 결정, 이 범위내에서 공장의 신.증설을 허용한 제도다.

게다가 환경 교통 인구 재해 등 각종 영향평가를 따로 받아야 했다.

한국통신 등 기간통신사업자는 결산보고서를 금융감독원에 내고 있는데 정보통신부에도 같은 서류를 내고 있다.

공장 가동 연료로 석유를 쓰든 석탄을 쓰든 배출오염물질이 법적한도내라면 제한하지 않는게 바람직하지만 공장입지 지역에 따라선 청정연료나 저유황연료만 사용하도록 이중규제되고 있다.

환경개선부담금 수질개선부담금 폐기물예치금 폐기물부담금 등 각종 부담금도 중복부과돼 기업경영을 힘들게 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이 이런 저런 명목으로 내는 각종 준조세는 업체당 평균 61억원(99년기준, 전경련 조사)에 달한다.

중복성 규제를 정비하려면 유사규제 통폐합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론 부처간 이해가 달라 "덩어리 규제개혁"이 어렵다.

게다가 부처별로 규제기준이 달라 기업으로선 헷갈린다.

불필요한 규제도 있다.

케이블TV방송국에 프로그램을 유료로 공급하는 W사는 프로그램 질을 높이기 위해 현재 가구당 7천8백원인 이용요금을 올리고 싶지만 올릴수가 없다.

방송위원회에서 승인을 해주지 않아서다.

아예 명확한 규정도 없이 규제하는 사례도 있다.

D사는 인터넷은행을 설립하려고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에 문의했지만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D사 관계자는 "영국의 경우 인터넷은행 에그(Egg)가 출범한지 18개월만에 영국 전체예금의 1.4%를 점유할 정도로 성장했다"며 "아직 규정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와 대조적"이라고 밝혔다.

전경련 신종익 규제조사본부장은 "중앙 정부에서 폐지된 규제일지라도 일선 행정관청에선 그대로 시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강현철 기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