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신사년 설 연휴에도 어김없이 민족 대이동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미풍양속인 민족대이동이 짜증스러운 ''귀성전쟁''과 ''귀경전쟁''으로 바뀐 데에는 실종된 시민의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고속도로변에 뿌려지는 쓰레기,고속버스 전용차선에 끼여들기,갓길운행 등이 귀성·귀경전쟁의 정체다.

지난번 폭설때에도 실종된 시민의식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지만,무질서와 불친절,쓰레기투기 등의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경기가 끝난 축구장이나,농성이 끝난 농성장에 산더미같이 쌓인 쓰레기는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시민의식을 어떻게 고양시킬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2002년 월드컵대회를 대비해 시민의식 제고 캠페인이 한창이다.

그러나 굳이 말하자면 손님맞이용으로 벌이는 캠페인은 주체적인 것이 아니다.

질서 지키기나 바가지요금 받지 않기 및 친절한 미소짓기운동은 외국 관광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우리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고 우리 공동체의 공동선을 이루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시민''의 개념을 새롭게 반추해보자.역사적으로 보면,''시민''의 개념은 보편적이라기 보다 특권적 개념이었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은 일정한 범주의 사람들만을 의미했고,시민들에 한해 정치참여의 권리와 의무가 주어졌다.로마시대에도 병역의무는 노예가 아닌 시민들의 몫이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은 로마시민들에게만 부여된 의무이며 특권이었다.

오늘날 민주시대에 시민권과 시민자격은 일정한 사람들에게 배타적으로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가 됐다.

평등한 시민권의 개념이 말해주듯,시민의 자격은 한 사회에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귀속적인 권리다.

하지만 시민의식없는 시민들이 대거 출현하게 된 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볼 수 있는 무질서와 혼돈도 그 결과가 아니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시민''의 개념을 귀속적 범주보다 성취적 범주로 접근하는 것이 어떨까? 한국사회에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 시민의 자격을 주면 ''좋은 시민''과 ''나쁜 시민''의 구분이 불가능해지고,시민의식없는 시민들이 다수 양산된다.

시민의 권리가 거져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니까 투표일에 기권하고 놀러가는 일이 생기며,밤중에 몰래 산업쓰레기를 땅속에 묻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시민''이란 모두에게 주어진 법적 신분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소중한 직책이며 역할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투철한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만 시민으로 인정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 같다.

시민다운 의식과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만 시민 자격과 시민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나누어,먼저 시민의식에 필요한 이론적 지식을 묻고,다음에는 줄서기에 새치기하는 등,비시민적 행동을 한 사람을 실기시험에서 떨어뜨리는 식으로 제도를 운영하면 어떨까?

물론 시민권은 평등권이다.

그런데 시험을 치르고 자격증을 준다면,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위배되지는 않을까 하며,시민자격증 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자격증을 획득하며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결코 낯선 것은 아니다.

우리사회에서 운전자가 되려면 운전면허증을 따야하고,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선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쳐서 합격해야 한다.

또 일정기간이 지나면 면허증도 경신해야 하고,음주운전을 하면 운전면허증이 취소되기도 한다.

시민의 자격이란 운전자의 자격보다 훨씬 소중한,품위가 요구되는 자격이다.

일정한 시민의식과 시민정신을 보여준 사람에게만 시민자격을 부여하는 제도가 비민주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공적과 관계없이 시민권과 시민자격을 인정하는 것은 ''시민''을 너무 값싼 범주로 치부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실종된 시민의식과 시민정신을 회복하고,귀성전쟁이나 귀경전쟁이 없는 즐거운 민족대이동이 이뤄지기 위해서 시민의식이 가득한 시민들을 양성할 민주시민자격증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