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위상해넘이가 완전히 끝난 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시작됐을 무렵 해인사에 도착했습니다. 주파수를 맞춰 놓았던 라디오가 숲길에 접어들어 멈췄다가 갑자기 청명한 음악을 흘려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해인사 답사를 라디오가 축하해주는 듯했습니다. 그때의 음악은 다름 아닌 듀크 조던의 <플라이트 투 덴마크> 속 ‘에브리씽 해픈스 투 미(Everything happens to me)’였습니다. 이 곡은 제목처럼 여행의 설렘을 담았습니다. ‘지금부터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겠구나’ 하고 말이죠. "어서들 와"라고 환영해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이 음악을 들을 때면 덴마크 대신 합천 해인사를 떠올리게 될 것이란다. 그리고 먼 훗날 우리가 언젠가 덴마크를 여행하게 될 때 다시 해인사를 떠올릴거야"라고 말이죠. 그렇게 말한 저야말로 그 이후로 듀크 조던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생각하곤 합니다. 아직 덴마크에 가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그곳을 방문한다면 레고 대신 팔만대장경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이로써 듀크 조던의 음악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과 엮이며 제게 남다른 음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반드시 장소성을 곁들이지 않더라도 재즈는 참 근사한 음악입니다. 재즈는, 단지 치과 음악이 아닙니다.[듀크 조던 - Everything Happens to Me]치과 음악원래 저희 집 아이들에게 재즈는 치과 음악에 불과했습니다. 오스카 피터슨, 키스 재릿, 빌 에반스와 같은 위대한 재즈 음악가들의 명반을 틀고 설거지하고 있으면, 당시 일곱살배기였던 막내가 종종 말을 건넸습니다. &q
1970년대 서울에 부동산 광풍이 불었다. ‘복부인’이란 말도 그때 탄생했다. 학력이 높고 경제적으로 상층에 속하는 30~40대 여성들로, 복덕방을 드나들며 투자 목적으로 아파트를 사들였다.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일하는 민속학자 유승훈은 최근 펴낸 <서울 시대>에서 “광풍처럼 서울을 휩쓸고 간 복부인과 복덕방의 풍속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지금까지 여진처럼 존재한다”며 “복부인을 욕하던 사람들도 복부인의 욕망을 내재화했고, 서울 사람들의 투기 심리는 보편화됐다”고 했다. 복부인의 등장은 아파트 보급과도 관련 있다. 1972년 서울 100만 가구 가운데 4%만 아파트에 살았다. 좁았고 날림 공사로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았다. 당시 이촌동에 들어선 한강맨션은 아파트도 고급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젊은 주부들이 좋아했다. 거실, 부엌, 목욕탕, 화장실, 침실이 한 공간에 있어 이동이 편했고, 집을 관리하기도 수월했다. 그런 가운데 주택 부족, 강남 재개발 등이 겹쳐 집값이 폭등하자 투기 열풍이 불었다. 당첨만 되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 당시 언론은 이렇게 묘사했다. “복부인은 혼자만이 아니고 가족들을 이끌고 다녔다. 시아버지, 시동생까지 이끌고 아파트 청약 창구를 흥분해서 돌아다녔다.”입주하지 않고 프리미엄을 얹어 파는 전매가 횡행했다. 잠실 한 고층 아파트는 15회 전매됐다. 다른 아파트도 7~8회 전매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법적으로 전매는 1년간 금지됐다. 하지만 집을 등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매하는 방법으로 같은 집이 하루에도 여섯 번 사고 팔렸다. 복방이 이를 부추겼다. 가공의 인물을 매수자로 내세워
예전 동호인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 꽤 있다. 음악과 오디오라면 죽고 못 사는 사람들이었는데 일부는 가족과 함께 상생의 미덕을 실현하느라 마치 스님이 된 듯 욕구불만을 참고 지내는 친구도 있다. 불철주야 바쁜 일터에서 땀 흘리며 음악이라곤 출퇴근 지하철에서 이어폰으로 잠시 듣는 게 전부인 사람도 있다. 일부는 아주 운이 좋은 경우여서 충분한 시간을 보장받아 음악을 즐기며 몇 년에 한 번은 크게 업그레이드를 감행하는 사람도 있다. 가족들에게 음악을 선물하면서 자신도 즐거이 음악을 즐기는 그들은 나름 부럽다.흥미로운 건 음악의 끈을 놓고 있지 않은 사람들 특히 오디오는 음악의 도구로서 철저히 복무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사람들의 오디오관(?)이다. 이들은 오디오를 주체로 생각하고 음향을 즐기는 철저한 오디오파일(audiophile·오디오 애호가)과 조금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예를 들어 최근 유행하는 알루미늄이나 카본 인클로저를 활용한 스피커를 추천해주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들어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역시 나무 인클로저가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제대로 내주지 못한다고 수줍게 고백한다.오랜만에 연락이 온 선배도 비슷한 경우다. B&W(바우저 앤 윌킨스) 802D를 수년째 써오고 있는데 업그레이드하고 싶다고 자문을 구해왔다. 금액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고 나는 위화감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스피커로 추천했다. 동일한 브랜드의 신형인 802D4가 그것. 들어보고 그 선배가 한 말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던 소리가 아니네요”. 진동판 소재가 대거 업그레이드되었고 인클로저에 알루미늄이 추가되었으며 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