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진대제(49) 디지털미디어 총괄 사장은 "디지털 강자"가 되는데 필요한 자질을 갖춘 경영인이다.

85년부터 삼성 반도체 신화를 일군 그는 다시 비메모리 사업 육성의 기틀을 마련한 후 작년 2월부터 디지털 사업을 이끌고 있다.

1년 전께 "디지털을 해보라"라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지시를 받았을 때 진 사장은 "가파른 언덕을 올라 반드시 정상에 서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변화를 반기고 도전을 즐긴다.

창의력으로 승부를 걸면 디지털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디지털 사업은 세트 속에 숨겨져 있는 반도체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진 사장은 특히 "잘 만든다고 결코 잘 팔리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디자인과 브랜드 등 마케팅 요소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유행을 좇아,고객을 잡을 수 있는 제품을 제 때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제품을 작동하는 솔루션도 같이 가야 한다.

이런 요건을 충족시키려면 시야를 넓혀야 한다.

진 사장이 자주 해외에 나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지난해 19번의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디지털TV 사업을 위해 방송사 관계자를 만나고 현지 매장의 소리를 들었다.

올해도 한달에 두번 정도 밖으로 나가 경쟁사의 동향 등을 파악할 예정이다.

출장을 다닐 때면 으레 새로 나온 노트북을 갖고 다닌다.

고객 입장에서 신제품을 써보고 개선할 점을 꼼꼼히 찾기 위해서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파워포인트로 자신의 사업 비전을 정리할 정도로 컴퓨터를 능란하게 다룬다.

선진 기업의 CEO라면 자신있게 회사를 소개할 수 있는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게 진 사장의 생각이다.

경기도 수원 공장에 있는 집무실 책상에도 4대의 컴퓨터가 있다.

여러 제품을 써 보면서 제한된 시간에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양으로 욕심을 부린 것이다.

그는 "디지털 사업의 성패는 짜임새 있는 네트워크 형성 여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선 독불장군식 경영으론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선진기업과 전략적으로 협력하는 업무는 자신이 직접 맡는다.

"CEO(최고경영자)끼리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 이해가 맞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된다"고 말한다.

일본 NEC사와 기가 D램 공정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소니와 디지털TV 사업 전망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자신감있게 경쟁 기업의 문을 두드렸기에 가능했다.

이태 전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이 소니 이데이 회장을 만났을 때 자리를 같이 했던 진 사장은 이데이 회장에게 CTO(최고기술관리자)와 직접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그는 실무형 경영자다.

막연한 것보다 실질적인 것을 좋아하고, 한번 시작하면 결과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자신의 사업 비전을 명쾌하게 제시한 후 상대를 끌어 들여 동반자적 협력 관계를 유도하는게 그의 협상 전략.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 등 세계 굴지의 최고 경영자들과의 친분도 그렇게 쌓았다.

더욱이 진 사장은 체구(신장 1백62cm)는 작지만 두둑한 배짱을 지니고 있기로 이름나 있다.

그는 지난 85년 삼성전자에 올 때 임원 자리를 내놓을 것을 당차게 요구했다.

당시 그의 나이 33세.

회사측은 난색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삼성전자 미국 현지법인(SSI)의 부장급 수석연구원으로 입사한지 2년도 안돼 이사 자리에 올랐다.

87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이사가 될 때 창업주인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을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

진 사장은 "선대 회장과 고향(경남 의령)이 같아서인지 친할아버지를 뵙는 친근감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선대 회장은 먼저 진 사장의 골프 실력에 관심을 나타냈다.

미국을 다녀온 홍진기 회장(전 중앙일보 회장, 86년 작고)이 선대 회장에게 진 사장의 골프 실력을 전한 것이다.

유독 조미료 사업과 골프가 뜻대로 되지 않았던 선대 회장으로선 작은 체구로도 골프를 잘 하는 진 사장에게서 반도체 사업 성공을 예감했는지 모른다.

진 사장은 선대 회장에게 고집적 메모리 제품을 많이 만들어 세계 시장을 석권하겠다고 약속했고 회사는 이후 16메가 D램 등 핵심 프로젝트를 진 사장에 맡겼다.

그래선지 그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기업인으로 성공하려면 운도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반도체로 삼성과 인연을 맺었지만 디지털 사업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계획이다.

진 사장은 "아날로그 시대에 소니를 이길 수 없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얼마든지 일류 메이커가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지휘자의 단순한 몸짓이 심오한 하모니를 이끌어내듯 자신도 사람들이 가장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디지털 제품을 안겨주겠다는 꿈이 있다.

진 사장의 꿈이 뜻대로 실현되면 삼성전자는 2005년 디지털 분야에서만 30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초일류 전자종합업체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