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은 33세에 후사없이 승하한다.

왕권의 임명권은 헌종의 어머니인 조대비의 손에 들어갔고 이미 여러 방면에서 손을 써두었던 홍선군 이하응은 자신이 철종과 6촌간이란 점을 잘 이용하여 둘째 아들 명복을 등극시키니 이가 곧 고종이다.

고종의 탄생지가 집은 달라도 터는 지금의 운현궁 자리였음을 운현궁 관람권에도 명기되어 있다.

대원군이 되기 전 흥선은 안동 김씨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파락호 처신을 했다거나 ''상갓집 개'' 소리까지 들어가며 자신을 숨겨 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과연 그것 뿐일까?

이 시대 최고의 한옥 장인 목수(木壽) 신영훈 선생은 여기에 의문을 품는다.

우선 헌종이 현종 수릉관인 흥선에게 특별히 상을 내리는데 그 규모가 자그마치 밭 50결(16만3천7백50평)과 노비 여섯명이나 되었고, 추사 김정희가 흥선이 사는 집에 걸도록 편액을 써주었는데 편액을 걸만한 집에 살았다면 도저히 가난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마 요즘처럼 정부의 정보망이 탄탄치 못하여 흥선의 재산을 잘못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나 아닐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정말 흥선은 노회한 정치꾼으로 당시 실세들을 적당히 속이고 아부하여 처신을 절묘하게 하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곳은 철저히 신영훈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답사를 하게 된 곳이지만 그 분은 장인이고 나는 책상물림인지라 생각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책상물림보다는 현장의 전문가가 훨씬 낫다는 점이다.

나는 터를 볼 뿐이고 신영훈 선생은 집을 보니, 터가 더 오래갈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풍수를 위로 볼 사람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집은 그 분 표현대로 하자면 가운데 우주(中宇宙)이니 설명이 가능하겠으나 땅이란 하늘의 뜻을 이어받은 곳이라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이 문제란 뜻이다.

신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건축물을 보지만 별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다.

안목이 따라가지 못하는 까닭이다.

다만 터를 보는 눈은 조금 가지고 있어 거기에 기대어 땅을 살피기 시작한다.

건축물에 대해서는 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서로를 분리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책상물림이요 신 선생은 현장 출신인지라 도무지 따라잡기가 어렵다.

그것을 전제로 하고 얘기를 정리하자.

먼저 전제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그 분의 저서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그 분이 직접 말씀하신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대로 인용하면 이렇다.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면 덕기(德氣) 있는 사람은 좋은 부분을 지적하는 반면에 꼬장꼬장 캐기 좋아하는 성정은 결점을 꼬집고 비평하는 쪽으로 초점을 맞춘다. 여기저기 답사다니는 일행을 쫓아다니며 설명을 들어본 바가 그렇다. 말하는 사람의 성정이나 식견에서 오는 차이겠지만 난숙한 지식을 지닌 사람은 기법과 법식 등을 설명하면서 특성을 얘기하는데 비하여 그렇지 못해 아직 수준이 미달인 사람은 보존되고 있는 현상에서 관리자의 약점을 지적하며 만족해 하는 경향을 보인다. 역시 어느 분야나 사이비는 있게 마련인데 최근 갑작스러운 급조된 답사 여행이란 데를 따라 다니다 보면 ''아차, 이것 잘못 왔구나'' 싶은 경우가 적지 않다."

나 자신 참괴(慙愧)스러울 뿐이다.

나도 남의 잘못을 지적하되 칭찬을 별로 하지 못한 것은 사실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지적하자.

도대체 서울이란 무엇인가?

우선 오행(五行)적인 풀이를 해보자.

오행이란 시간과 공간 개념을 아우르는 동양적인 세계관의 이해 구조이다.

그리 간단치가 않다.

우선 목(木)은 동쪽이고 봄이며 새싹이 돋아나는 계절이고, 화(火)는 남쪽이며 여름이면서 성장을 상징한다.

토(土)는 중앙이자 초가을이고 따라서 여름의 무성함을 성숙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금(金)은 가을이면서 서쪽을 상징하고 이제 결실을 맡게 된다.

그리고 수(水)는 북이면서 겨울이다.

씨앗으로 다음 해 봄의 새싹을 갈무리하는 단계이다.

오행 구조는 천지 조화를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중요 도구이다.

이것은 요소적 구조가 아니다.

서양인들이 오행을 일컬어 다섯가지 요소(five element)라고 번역한 것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다.

계절은 변화하며 공간은 주체에 따라 좌우 상하를 변질시킨다.

그래서 불변의 요소가 아니라 움직임인 행(行)인 것이다.

서울을 오행으로 설명하자면 어떤 것이 될까?

모든 기록은 서울의 주산(主山)인 북악산을 충천하는 목성(衝天木星)으로 보고 있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북악은 목성이 아니라 금성(金星)이다.

여기서 별이란 뜻의 성(星)은 하늘의 별이 땅에 내려와 산을 이루었다는 것으로 땅을 의미한다.

금성의 북악은 크게 두 갈래 줄기를 서울 명당을 향하여 뻗고 있다.

그 하나가 청와대를 거쳐 경복궁에 이르는 정맥인데 이 터는 화의 기운을 갖고 있다.

또 하나의 정맥은 창덕궁을 이루는데 이는 목의 기운에 해당된다.

화는 금에 대하여 상극(相剋)이고 금은 목에 대하여 상극이다.

조선 왕조의 궁궐은 정궁인 경복궁은 주산인 북악에 대하여 상극이 되고, 북악은 아궁인 창덕궁에 대하여 상극이다.

그 사이에 있는 운현궁은 수에 해당된다. (7회에 실렸던 그림 참조)

''동명연혁고''에 보면 운현궁 바로 남쪽에 있는 교동초등학교 뒤의 고개는 비만 오면 땅이 몹시 질척거렸으므로 구름재라 불렸다고 한다.

또는 진골(泥洞)이라고도 하였다.

질척거리는 땅에서 구른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다시 한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엉뚱하게 운현(雲峴)으로 바뀌고 이것이 운현궁의 지명 연원이 된다.

어찌 되었거나 서울의 주산인 북악은 창덕궁에 대해서는 상극이고 경복궁은 북악에 대해서 상극인 꼴이 된 것이다.

주산과 명당 정혈이 상극이니 왕조의 집안꼴이 말이 아닐 것은 정한 이치이다.

오행상으로 말이다.

하지만 금생수(金生水)이니 운현궁 터는 북악과 잘 어울리는 꼴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운현궁의 주인은 왕조의 적손(嫡孫)이 아니었다.

그러니 우선은 정궁인 경복궁의 맥을 따져 나갈 수밖에 없다.

이 맥은 인왕산과 안산을 거쳐 한강변에서 와우산과 노고산을 만드는데 이 산들은 토산이다.

즉 목극토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한강이니 당연히 수이고 토극수라 또 다시 상극 관계이다.

그리고 서울의 조산(朝山)인 관악산을 이루게 되는데 이는 전형적인 화산이라 수극화에 해당된다.

물론 풍수에서 기는 물을 만나면 멈춘다(界水則止)는 원칙이 있지만 서울의 조산으로 관악을 꼽는데 이견이 없을 뿐 아니라 한강 밑으로 밤섬과 여의도를 잇는 석맥이 이어지므로 반드시 기가 끊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상극의 연속인 서울에 도성을 차린 조선 왕조가 바람 잘 날 없다는 것은 오행상 당연한 이치가 되는 셈이다.

추운 겨울 날씨에 운현궁을 찾는다.

관람객은 한 사람도 없다.

들어가기 전 길 건너 있는 천도교 수운회관부터 둘러본다.

입구에 작년 12월20일 제막되었다는 <세계 어린이 운동 발상지>란 석비가 있다.

전면에 소파 방정환의 글이 들어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한데 뒷면을 보니 무슨 위원이란 직함으로 현재 위세 당당한 권력층의 이름이 줄줄이 쓰여져 있다.

한마디로 꼴불견이다.

왜 그분들의 성함 석자가 거기 있어야 하는지도 의문이고, 무엇보다 앞으로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 알 수 없는 인물들이 그곳을 장식하고 있는 것도 못마땅해서 해 본 소리다.

[ 본사 객원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