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부서 최고] '한냉 서울지사 생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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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사 생산부는 한마디로 한냉 역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71년 한국냉장에서 4개 사업소를 발족할 시기에 생산부의 전신인 ''가공과''라는 이름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이때 주로 처리한 것은 농수산물이었다.
하지만 한냉이 농수산물에서 축산물로 취급 종목을 바꾸면서 81년부터 수입쇠고기 포장육을 시험 생산하게 됐다.
한창 일이 많았을 때는 하루 수입 쇠고기 2백30마리,통조림 1만여캔을 생산하고 종업원도 2백50명씩 일했다.
지금은 하루 수입 쇠고기 1백마리를 처리하고 있다.
종업원도 53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3월 난데없는 구제역이 우리 나라 전역을 긴장으로 몰고갈 때는 정말 ''죽어라''하고 일에만 매달렸다.
당시 3개월 동안 서울지사에서는 돼지 1만여마리,소 7천여마리를 처리했다.
자체처리장에서는 물론 구제역이 처음 일어난 파주지역의 수매 처리를 전담하기도 했다.
현지 8개 업체에 직원을 파견해 도축 임가공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이때의 경험은 앞으로도 예기치 못한 일들에 대처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것 같다.
서울지사 생산부는 현재 본사의 관련 부서와 협조해 지난해 하반기에 시작한 학교급식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사업이야말로 한냉의 향후 영업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또 정부가 들여온 수입우 지육처리가 종료될 것에 대비,자체 수입에 의한 지육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안상욱 대리 ahnsang@hannaeng.co.kr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71년 한국냉장에서 4개 사업소를 발족할 시기에 생산부의 전신인 ''가공과''라는 이름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이때 주로 처리한 것은 농수산물이었다.
하지만 한냉이 농수산물에서 축산물로 취급 종목을 바꾸면서 81년부터 수입쇠고기 포장육을 시험 생산하게 됐다.
한창 일이 많았을 때는 하루 수입 쇠고기 2백30마리,통조림 1만여캔을 생산하고 종업원도 2백50명씩 일했다.
지금은 하루 수입 쇠고기 1백마리를 처리하고 있다.
종업원도 53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3월 난데없는 구제역이 우리 나라 전역을 긴장으로 몰고갈 때는 정말 ''죽어라''하고 일에만 매달렸다.
당시 3개월 동안 서울지사에서는 돼지 1만여마리,소 7천여마리를 처리했다.
자체처리장에서는 물론 구제역이 처음 일어난 파주지역의 수매 처리를 전담하기도 했다.
현지 8개 업체에 직원을 파견해 도축 임가공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이때의 경험은 앞으로도 예기치 못한 일들에 대처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것 같다.
서울지사 생산부는 현재 본사의 관련 부서와 협조해 지난해 하반기에 시작한 학교급식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사업이야말로 한냉의 향후 영업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또 정부가 들여온 수입우 지육처리가 종료될 것에 대비,자체 수입에 의한 지육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안상욱 대리 ahnsang@hannae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