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

작년 한해 전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많은 일들이 정보통신업계를 축으로 숨가쁘게 일어났고 이러한 움직임들은 때로는 놀라움을, 때로는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필요한 관점은 무엇일까.

네트워크시대의 기본은 ''상생(Win-Win)''의 철학에 있다.

가령 어떤 신용카드회사가 그동안 우편으로 보내던 청구서를 e메일로 전환한다고 가정하자.

신용카드 소지자는 주소변경이나 우편물 분실로 인해 청구내역을 제 때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돼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고객의 입장은 다르다.

e메일로 청구서를 받으면, 무슨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일일이 메일을 열어봐야 한다.

또 그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려면 메모하거나 프린터로 출력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신용카드업체는 e메일 발송으로 종이청구서를 제작하는 비용과, 발송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어 결국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기업인 셈이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e메일을 보내는 기업에 일정비용을 부담시키고,받는 사람에게 비용의 일부를 보상해 주는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를 상생의 철학에서 도출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모두의 혜택을 높일 수 있고, 사회적으로는 스팸메일까지 차단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설득력있는 논리를 찾아 낼 수도 있다.

요즈음 사회의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가 의약분업 문제다.

한쪽이 얻으면 다른 한쪽이 잃어야 하는 이른바 ''Win-Lose 게임''이 무려 1년 이상 지루하게 계속됐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 관계당국은 곤혹스런 상황에 빠졌었고, 그동안 환자들의 고통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 의약분업이 마침내 타결돼 본격 실시한지 7개월째다.

하지만 얼마전 ''약물 오.남용 방지''라는 취지로 주사제를 의약분업에서 제외시켜 새로운 논란이 일고 있으며 또 ''의약분업 평가작업''에 따른 평가의 방향과 내용을 둘러싸고 새로운 줄다리기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는 등 조정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의약분업의 이같은 현상은 양쪽이 변화된 패러다임을 바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시대적 관점에서 자기의 이익만을 계속 주장함으로써, 국민들의 눈에는 의약 모두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의약분업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정보통신사회.디지털 시대의 인프라인 네트워크가 확산되고 또 정착됨으로써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의사는 환자에 대한 약 처방을 컴퓨터로 입력해 온라인화하고도, 환자에게는 오프라인 형태의 처방전을 넘겨 준다.

환자가 이 처방전을 약국에 갖고 가면, 약사는 오프라인 된 처방내용을 다시 입력해 온라인화한 뒤 일치하는지 체크하고 나서야 환자에게 약을 준다.

이 무슨 비생산적.비효율적인 일인가.

겨울 철새인 기러기들은 수천㎞에 이르는 장거리 비행을 하기 전,몸 속에 지방을 2배 이상 충분히 축적해 둔다고 한다.

이윽고 하늘높이 날아올라 장거리 비행을 본격화할 때는 영어 알파벳의 ''V''자형으로 줄지어 날아 간다.

선단 기러기들에 의한 ''V''자형 비행은 유체역학적으로 상승기류를 만들게 되어, 후미의 기러기들은 75%의 에너지로 비행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선단 기러기가 힘이 빠지게 되면 뒤따라오던 기러기들과 순차적으로 교대를 해, 기러기 떼들의 비행 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게 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리더들도 조직원들에게 상승기류를 제공해야 한다.

또 상승기류를 타고 있던 조직원들은 리더가 힘들어 할 때면 앞에 나서서 그 힘든 일을 담당할 수 있는 리더격 조직원이 돼야 한다.

우리 사회의 모든 주체들은 단순한 ''고객 만족'' ''고객 감동'' 차원에 그칠게 아니라, ''고객들이 성공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지혜와 노력을 짜내 아낌없이 베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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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국 미주리대 산업공학 석사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정보 박사
△미국 미시간대 교수
△독일 하겐대 교수
△일본 도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