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친구가 올라와 딱히 갈 만한 곳이 없어 전시장으로 안내했는데 그는 퍽 좋아했다.

"그림이 소박하고 재미있다"고 아는 체 하면서 제 멋대로 평도 서슴지 않았다.

장욱진(1918~1990) 화백이 부인을 그린 ''진진묘''(캔버스에 유채,33X24㎝) 앞에 서더니 그림을 찬찬히 드려다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는데 "아동화 같구만"하고는 초등학교 교장선생 티를 냈다.

장 화백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도 솔깃해서 듣고 있었다.

우리는 다방에서 시답잖은 미술논쟁을 벌였다.

그는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이냐"고 물었다.

"이 사람아,그런 질문이 어디 있어"하고 핀잔을 주었더니 그는 "미술전문지를 만드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느냐"고 되받아쳤다.

머뭇거리다가 "정답이 없는 걸 물으니까 그렇지"하고는 "자네가 좋다고 생각하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 아니겠어" 라며 예봉을 피했다.

좋은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지 꼭 객관적 해답을 요하는 건 아니다.

굳이 대답하라면 꾸미지 않고,생각이 담겨 있고,억지부리지 않은 자연스러운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구도가 어떻다느니 색상이 어떻다느니 하고 미술 이론을 내세울 수도 있고 미학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이런식으로 좋은 그림 나쁜 그림을 가늠하려면 모든 감상자가 미술이론가나 미학자가 돼야 할 게 아닌가.

좀 구차한 대답일지 모르지만 미술 애호가라면 본인의 느낌으로도 좋고 나쁨을 알 수 있다고 본다.

좋고 나쁨이란 말보다는 마음에 들고 안 든다는 말이 훨씬 정직한 표현일 것이다.

진진묘는 장 화백이 1970년에 그린 그림이다.

집안 살림을 몰라라 했던 자신을 대신해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동양서림''을 운영하며 가계를 꾸려나가던 부인 이순경(李舜卿ㆍ80) 여사를 위해 제작한 작품이다.

경기 덕소 화실에서 1주일 동안 침식을 잊고 제작에 몰두해 완성한 인물화.

1주일 만에 이 작품을 들고 집에 돌아와 부인에게 바치고는 탈진해 석달 동안이나 앓아 누웠다는 일화가 전한다.

진진묘는 이 여사의 법명(法名,불교 이름)이다.

이 여사는 돈독한 불교신자.

장 화백도 불교에 심취,거사처럼 살았다.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천의무봉(天衣無縫)한 장 화백의 삶이 예술세계까지 배어들어 천진스러운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이 작품은 현대식 탱화다.

부인 이 여사를 부처처럼 묘사,자비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자세히 보면 뒤에 여러번 덧칠해서 만들어낸 후광(後光)이 은은하게 보인다.

진진묘야 말로 불교 정신과 서양화 기법을 접목한 심플한 그림이 아닐까.

월간 아트인 컬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