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유달리 눈이 많았다.

길이 미끄러워 탈이지 오랜만에 눈 구경은 실컷 하고 지낸다.

내가 공부하던 시카고에도 93년 겨울에 폭설이 자주 내렸다.

기온까지 영하 30도로 내려가 차(車) 시동을 껐다가 다시 걸면 안 켜지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살판난 건 동네 흑인들이었다.

트럭에 대형 충전기를 싣고 돌아다니는데 온 길거리에 널린 게 돈이었다.

차 한 대당 10달러 받는 충전 서비스사업이 최대 호황을 누렸다.

보통 때 같으면 당연히 공짜로 해 줄 일을 때를 잘 만나 "짭잘한" 수입을 올린 셈이다.

그런데 시카고 시(市)는 반대로 곤경에 빠졌다.

도로에 뿌릴 염화칼슘이 바닥난 것이었다.

아무리 뿌려도 눈은 또 오고 급기야 단위당 1달러 하던 염화칼슘 가격이 10달러까지 치솟았다.

봄이 오면 1달러로 다시 내릴 게 뻔한데도 당장 급하다보니 비싼 값에 인접 주(州)로부터 수입(?)까지 해야 했다.

덕분에 나도 난생 처음 왕소금이 아닌 금싸라기를 밟으며 운전을 해 보았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일은 허다하다.

앞으로 가격 하락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현재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는 그런 일 말이다.

지난 달 강추위가 덮치던 날은 밤새 "따불(double)"을 불러도 택시 잡기가 힘들었다.

산(山) 밑에선 3백원이면 충분한 커피 한잔이 산 정상에선 천원을 내고도 마신다.

주식으로 눈을 돌려보자.

코스피 선물(先物) 저평가는 96년 이후 줄기차게 목격되는 현상이다.

최근 코스닥 선물 역시 현물보다 낮게 간다.

97년 11월 외국인한도 확대 때도 현저한 선물 저평가에도 불구, 삼성전자는 꿋꿋이 상한가를 기록했다.

해석을 하자면,원금 밑질 정도로 미래는 어둡지만 주식이 좋다거나 필요해서 자꾸 사 대는 데는 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경제학에선 이런 현상을 두고 "공급의 비대칭성(asymmetry in supply) "이란 표현을 쓴다.

뜻은 이렇다.

상대적 "공급과잉"은 지나친 가격하락 방지를 위해 그 공급을 유보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지금 너무 값이 나쁘면 안 팔고 후일을 도모해 남겨 둘 수 있단 말이다.

그러면 자연스런 자정(自淨) 과정 속에 현재가격과 예상 미래가격은 괴리가 없어진다.

반대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수요급증이든 절대적 물량부족 때문이든 여하튼 상대적 "공급부족"에는 대책이 없다.

앞의 논리대로 지금 가격이 워낙 좋으니 훗날 공급할 물량을 앞당겨 와야 되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내년에 추수할 쌀을 오늘 미리 갖다 팔 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향후 가격은 나빠 보여도 지금 당장은 가격이 얼마든지 비등할 수 있다.

앞서 염화칼슘 예처럼 열 배 괴리가 한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이래서 부족할 때는 풍족할 때와는 가격 구조가 비대칭이라 하는 것이다.

결코 충동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게 아니고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다.

장(場)이 많이 떴다가 출렁대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또 거품론이 나오고 있다.

거품을 아까운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설사 진짜 거품이라 쳐도 비누보다 거품이 더 큰 돈이 됨을 온갖 시장 역사가 말해 주지 않는가.

바닥론에 그만큼 다쳤으니 이제 거품론에 또 질식되는 일은 없도록 하자.

주식 사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거품이란 없다.

김지민 < 한경머니 자문위원.현대증권투자클리닉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