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처음 들어와 거주한 상주 외교관이 아닌 일반인은 청(淸)의 상인들이다.

그들은 1882년 7월 임오군란 진압을 구실로 진주한 청군을 따라 40여명이 입경해 오늘날의 중구 수표동,종로구 관수동 일대에 자리잡고 살았다.

2년뒤 청국인들은 3백50여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이를 빌미로 일본인 19가구 89명이 1885년 처음 입경한다.

일본인들은 지금의 중구 예장동 주자동 충무로1가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 거주 청국인들은 1893년 3천여명이나 됐다가 95년 청일전쟁에서 패하자 반 이상이 귀국해 버렸다.

한일합방이 되던 해인 1910년 말 통계를 보면 일본인을 제외한 서울 거주 외국인 2천여명 가운데 청국인이 1천8백여명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인은 3만4천여명에 이르고 있다.

일본인 청국인이 상업을 목적으로 입경한 것과 달리 기독교 포교나 의료 교육사업이 목적이었던 미국인 유럽인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거주자가 적어 1910년에는 미국인 78명, 영국인 65명, 프랑스 독일 러시아인이 각각 20여명씩 살고 있었다.

1920년 일본인을 제외한 서울 거주 외국인 1천여명중 미국인은 7백여명으로 늘어났고 40년대 들어 일제의 외국인 입국.거주제한 때문에 41년에는 외국인이 통틀어 4백5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서울시가 발표한 지난해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보면 서울 거주 4만여명의 외국인중 중국인(화교 제외)이 1만7천4백32명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줄곧 1위였던 미국인이 점점 줄어 99년보다 11%나 떨어진 1만6천6백여명인 반면 중국인은 97년보다 42%나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화교 2천여명을 합치면 그 수는 2만여명에 가깝다.

일본인은 6천7백여명으로 세번째다.

같은 한자문화권이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것이 중국인이 서울에 사는 주요인이고 대부분 상사주재원이나 학생들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상황변화에 따라 언제라도 들고 날 수 있는 것이 외국인이지만 과거를 되돌아 보면 한국의 경제적 위치가 그만큼 중요해졌다고 자부해도 좋은 것일까.

하기야 이제는 한국이 난민까지 인정하게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