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정부의 관치금융에 잇달아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은 법 절차를 무시하고 있는 행정부에 대한 ''경고''로 풀이된다.

사법부는 정부가 최근 법정관리제도처럼 사법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정책 입안이나 법 제정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있는데 대해 이의를 제기해왔다.

이번 판결은 사법부 내에서 행정부의 이같은 초법적인 태도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분위기 속에 내려졌다.

사법부 관계자는 이와관련, "행정부에 대한 사법부의 견제 차원이 아니라 ''법 정신''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라고 풀이했다.

이를 계기로 기존의 경제정책이나 수립 중인 각종 정책에 대해 법률적인 검토를 충분히 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라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 대우채권 환매제한 무효의 파장 =지난 99년 8월 대우사태 때 대우채권이 들어 있는 수익증권의 환매를 제한한 금융감독위원회의 결정을 무효화한 이번 판결로 금융권은 일대 소용돌이에 휩싸일 전망이다.

정부의 행정조치로 인해 피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이 투신사 등을 상대로 대거 소송대열에 뛰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시 환매가 제한된 대우 유가증권은 무보증·무담보 회사채 13조4천3백28억원, CP 5조4천6백44억원 등 총 18조8천9백72억원이다.

이는 전체 수익증권 잔액의 7%에 달했다.

계좌수만 1천2백여만개에 이른다.

금융기관들도 소송에 패할 경우 손실분 회수 차원에서 금감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 법원의 입장 =법원이 최근들어 이같은 판결을 잇따라 내리고 있는 것은 ''기업의 생사를 가르는 판결을 내릴 때 철저히 법률에 따른다''는 방침이 섰기 때문이다.

법정관리 화의 등 파산관련법을 다룰 때는 이같은 원칙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정책결정 당시의 경제상황을 지나치게 참작해 판결을 내릴 경우 이로 인해 추후 경제에 더 큰 짐이 될 수도 있는 사례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원칙은 지난해말 서울지법 파산부가 취한 조치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파산부는 작년말 공포된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의 일부 조항이 사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직권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지난해 11월3일에는 정부가 기업퇴출 명단을 발표하자 "퇴출 결정은 법원의 고유권한이며 정부의 일방적인 퇴출 발표와 상관없이 법원은 법정관리 절차에 따라 독자적으로 퇴출 기업을 결정할 것"이라고 반격하고 나섰다.

사법부의 이같은 움직임을 보면 정부가 경제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실시한 경제정책과 관련한 적법성 논란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 금감위 입장 =금감위도 대우증권이 (주)영풍에 대해 대우채가 포함된 수익증권을 환매(예탁금 반환)해 주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법원 판결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영풍이 지난 99년 ''8.12 환매제한조치''가 내려지기 전에 환매를 요구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감위는 법원이 ''금감위가 법적권한 없이 대우채 환매를 제한했다''고 해석한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관련법인 증권투자신탁업법의 7조4항에 ''부득이한 사유로 수익자의 환매청구에 응할 수 없을 때 환매 연기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따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 조항은 98년 9월16일 법 개정 때 폐지됐지만 개정된 법률 부칙 2조에 1년간 적용을 유예할 수 있게 돼 있어 8.12 조치의 근거가 됐다는 설명이다.

금감위는 지난해 11월2일 서울지법 민사13부가 이 사건과 유사한 환매 관련 소송에서 환매제한 조치가 ''타당하다''며 엇갈린 판결을 내린 바 있어 상급법원이 이를 명확히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김문권.오형규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