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새벽부터 청와대와 외교통상부는 발칵 뒤집혔다.

기자들은 기자들대로 한·미 정상회담이 정말 3월 7일 열리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당국자들의 방을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당초 이날 새벽 5시(현지시간 14일 오후 3시) 미국 백악관은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방문과 정상회담 개최사실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백악관은 한국 대통령의 방미는 함구한 채 콜롬비아 대통령의 방미 사실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한술 더떠 "한국의 지도자가 언제 미국을 방문할 것인가에 대해선 아는게 없다"고 까지 말해 버렸다.

정상회담이 양국간 가장 큰 외교행사인 만큼 양국이 모두 확인해야 하는 사항인데도 백악관은 이를 모르쇠로 일관해 버린 것이다.

더욱 이 우리 언론들은 14일 저녁 청와대측의 사전 브리핑을 듣고 15일 아침 일제히 정상회담 사실을 크게 보도한 뒤여서 기자들의 당혹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몇시간 뒤 이 사건은 인터넷 신문이 부른 ''사고''로 판명났다.

미국측은 서울과 워싱턴에서 공동발표하기로 약속됐던 정상회담 사실이 14일 밤 11시께부터 한국 언론의 인터넷 신문에 대서특필된 것을 알았다.

곧바로 외교채널을 통해 항의했고 "공동발표가 깨진 이상 편한 시점에 발표하겠다"고 한국 정부에 일방적으로 통보해버린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공동발표는 한.미 동맹관계와 대북공조체제의 공고함을 대내외에 천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게 됐다"면서 "그러나 이 사건으로 양국관계의 틈이 벌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애써 자위했다.

그러나 또 다른 당국자는 "외교관례상 host(미국)가 먼저 발표해야할 일을 guest(한국)가 앞질러 터뜨린 셈"이라면서 "작은 사건이긴 하지만 앞으로 이 일이 새로 시작하는 양국관계에 있어 심리적인 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시 행정부 출범 한달만에 전세계에서 다섯번째로 정상회담을 갖게 됐다며 들떴던 정부와 언론.이번 해프닝은 ''신중하지 못한 정부''와 ''조급증에 걸린 언론''이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준 교훈이었다.

김현석 정치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