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와 철골로 이뤄진 현대 건축공간인 로댕갤러리.

그 측면의 높이 9.5m,폭 17m에 이르는 거대한 유리벽면은 점토로 온통 발라져 있다.

흙이 마르면서 자연스레 균열이 일어난다.

그 갈라진 틈새를 파고드는 빛은 시시각각 변하면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중세 성당의 관조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흙은 스테인드그라스보다 한 수 위다.

스테인드그라스는 유리를 잘라 제작됐지만 흙의 틈새는 자연적으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전시실 중앙공간에는 역시 점토로 빚은 사각형 기둥(5mX0.6mX0.6m) 18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독특한 볼륨감이 느껴지는 기둥들은 고대 신전의 열주(列柱)를 연상시킨다.

도예작가 원경환(47) 홍익대 교수가 16일부터 서울 태평로 2가 로댕갤러리에서 갖는 ''흙의 인상''전은 용기제작이라는 전통 도자예술의 한계성에서 벗어나 순수한 조형세계를 추구하는 작가의 실험작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미술관 공간(유리벽면)을 마치 캔버스로 이용해 그 위에 흙을 얹고 틈새로 빛을 빚어내는 또 다른 ''미의 세계''를 보여준다.

작가는 이런 대규모 흙 실험작업을 위해 4일 동안 1백여명의 인부와 3t에 달하는 점토를 동원했다고 한다.

이번 설치작업은 그가 1989년 도쿄 ''사가초 엑시비전 스페이스(Exhibition Space)''에서 호평받았던 유리창 흙 설치작업 이후 12년 만에 시도한 작업이다.

작가가 설치작업에서는 가공하지 않은 흙을 사용한 반면 이번에 흑도소성(黑陶燒成)이라는 기법으로 선보인 21점의 오브제 작품들은 조형도예품이다.

흑도소성은 가마에 구울 때 장작에서 생기는 연기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 검은 빛을 띠게 하는 원시적인 방법.

유약을 바르지 않는 대신 그을음을 이용하기 때문에 토기와 같은 ''흙의 느낌''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작가는 "흙의 성질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유약과 달리 흑도소성은 흙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흙의 색깔을 바꾸는 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점토에 철 나무 등을 결합한 오브제 작품들에 ''토생금(土生金)'' ''목극토(木克土)'' 등의 제목을 붙여 동양 철학인 오행(五行)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즉 점토(土)에 물(水)을 이겨 빚어 낸 형상을 불(火)로 구운 뒤 나무(木)나 쇠붙이(金)를 결합함으로써 오행을 자신의 조형 재료로 삼고 있는 셈이다.

홍익대 미대 학부와 대학원 졸업 후 일본 교토의 시립예술대 대학원에서 수학한 원씨는 20여년 동안 도예작업만 해온 작가다.

4월8일(월요일 휴관)까지.

전시기간 중 매일 오후 1,3시 두차례 전시설명회가 열린다.

또 부대행사로 잘 알려진 ''로댕갤러리 음악회''가 격주로 목요일 오후7시에 공연된다.

(www.rodin.co.kr), (02)2259-7781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