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하기로 약속된 전날밤은 언제나 어린 시절의 소풍날을 떠올리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 6년 동안 소풍 전날밤은 언제나 노루잠으로 지새웠던 철부지였다.

일단 잠자리에 들었다 하면,누가 업어가도 모를만치 곯아 떨어졌던 그 시절,하룻밤 사이에도 몇 번인가 깨어나 밤하늘의 별들이 새벽녘까지 초롱초롱한가를 우러러보고 잠자리 머리맡에 곱게 접어둔 새 옷을 만지작거리며 가슴 설레었다.

그 어린 시절이 50여 년이나 흘러간 지금,나는 골프 약속이 있는 전날밤은 예외없이 잠을 설치고 만다.

하룻밤 사이에 적어도 두세 번씩은 소스라쳐 깨어나 뛰는 가슴으로 시간을 확인하게 된다.

늦바람 들었다더니,호들갑 떨지 말고 느긋하고 침착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잠 못 이루는 버릇을 개주어 버리기가 쉽지 않다.

아직 1백타도 깨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주제에 이 무슨 철부지 시절의 버릇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때마다,골프장에서 들었던 조크 한마디가 생각나서 실소할 때가 많다.

어떤 분이 친구들과 어울려 라운드에 들어갔다.

그런데 플레이 도중에 골프장 근처로 어떤 장례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은 샷을 하려다 말고 장례행렬을 향해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동행하던 골퍼가 의아해 어째서 인사를 올리느냐고 물었다.

인사를 보냈던 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행렬은 바로 그의 아내 장례식 행렬이었다.

또 다른 분은 라운드 도중에 공교롭게도 부친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이 분 역시 당장 집으로 달려가지 않고 그대로 플레이를 계속하면서 혼자 중얼거리더라는 것이다.

어쩐 일일까.

이때까지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물론 우스개 소리다.

그런데 만약 실제로 내가 그런 경우를 당했을 때,나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로 하여금 잠 못 이루게 만드는 이 골프라는 것에 도대체 어떤 마력이 있는 것일까.

jykim@paradi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