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중동평화 좌절의 교훈 .. 문정인 <연세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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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28일 이스라엘 야당인 리쿠드당 지도자 아리엘 샤론이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유태인들에게는 금기시 돼있는 동예루살렘의 알 사 이슬람사원을 기습 방문했다.
메카,메디나와 더불어 이슬람의 3대 성지의 하나며,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영토로 규정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징표인 알 사 사원에 샤론이 출현하면서 중동의 평화무드는 급격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동예루살렘의 이스라엘 귀속을 주장해온 샤론의 알 사 사원 방문을 모욕적 행동이라고 거세게 항의했고,이스라엘측은 이에 강경대응으로 맞섰다.
양측간 무력마찰의 악순환은 지난 4개월 동안 4백여명 이상의 인명손실을 가져오며 중동평화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지난 2월6일 개최된 이스라엘의 총리선거는 바로 이러한 사태악화의 책임을 에후드 바라크 총리에게 묻는 일종의 신임 투표였다.
선거결과는 이번 사태를 유발시킨 장본인과 다름없는 리쿠드당의 샤론 후보가 25% 이상의 표차로 바라크 총리를 누르고 압승했다.
선거기간중 샤론은 바라크의 ''실패한 평화'' ''실패한 안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특히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에서 양보만 하고 얻은 것이라고는 이스라엘의 안보위기뿐이라고 비판하면서, 예루살렘 전역에 대한 주권 고수, 기존 팔레스타인 자치구이외의 추가 영토양보 불가 등 강경노선을 표방하고 나섰다.
이스라엘 유권자들은 바라크의 유화정책을 거부하고 샤론의 강경정책을 택했다.
샤론의 승리와 더불어 1993년 오슬로 협정과 1998년 와이조약으로 이어지던 중동평화협상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이스라엘 노동당과 바라크 총리의 평화 구상은 좌절되고 말았다.
물론 샤론 신임 총리 당선자가 일거에 중동 평화협상을 파기시킬 수는 없다.
미국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야를 총괄하는 거국 내각을 구성하겠다는 샤론의 구상을 감안할 때,파격적 정책 전환을 가져오기는 힘들 것이다.
더구나 과거 중동평화협상의 주요 돌파구는 공교롭게도 보수 강경노선의 리쿠드당에 의해 마련된 바 있다.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상을 주도했고, 시나이반도의 이집트 반환을 통해 중동평화의 기틀을 구축한 것도 베긴하의 리쿠드당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 준다.
그러나 샤론의 전력과 정책으로 보아 중동평화의 앞날은 험난하다.
이번 이스라엘의 좌절된 평화가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은 크다.
무엇보다 평화협상을 국내 정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교훈이다.
샤론의 알 사 방문은 다분히 계산된 정치적 행동이었다.
결과적으로 샤론이 총리로 당선은 됐지만, 당리당략에 따른 정치적 포석은 막대한 인명의 손실, 평화협상의 중단, 이스라엘 내분을 가져왔다.
사리사욕이 ''평화''라는 이스라엘의 대승적 목표를 희생시킨 셈이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비교론적 함의는, 평화의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재빨리 포착해야 한다는 점이다.
불필요한 명분과 사소한 실리 때문에 시간을 끌면 끌수록 평화협상의 결렬 가능성은 높다.
사실 오슬로 협정 이후 7년이란 긴 세월을 끌면서 양측 모두에게 협상의 피로감을 가중시켰고,그 결과 바라크와 아라파트 모두 패자가 되고 만 것이다.
20개월 전만 하더라도''지금 당장 평화를 (Peace Now)''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보수.강경의 나타냐후를 바라크로 교체했던 이스라엘 유권자들이 단 4개월간의 동요때문에 바라크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샤론을 택하고 말았다.
이번 이스라엘 사례는 ''여론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사태추이에 따라 급변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
협상을 위한 협상보다는 결과를 위한 협상, 당리당략에 의해 좌우되는 협상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대승적 미래를 우선하는 협상을 전개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북측도 무리한 주장을 하지 말고 평화의 기회가 주어 질 때 이를 과감히 거머쥐어야 한다.
그래야 쌍방이 득을 보는 ''윈-윈''게임이 가능해지고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cimoon@yonsei.ac.kr
메카,메디나와 더불어 이슬람의 3대 성지의 하나며,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영토로 규정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징표인 알 사 사원에 샤론이 출현하면서 중동의 평화무드는 급격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동예루살렘의 이스라엘 귀속을 주장해온 샤론의 알 사 사원 방문을 모욕적 행동이라고 거세게 항의했고,이스라엘측은 이에 강경대응으로 맞섰다.
양측간 무력마찰의 악순환은 지난 4개월 동안 4백여명 이상의 인명손실을 가져오며 중동평화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지난 2월6일 개최된 이스라엘의 총리선거는 바로 이러한 사태악화의 책임을 에후드 바라크 총리에게 묻는 일종의 신임 투표였다.
선거결과는 이번 사태를 유발시킨 장본인과 다름없는 리쿠드당의 샤론 후보가 25% 이상의 표차로 바라크 총리를 누르고 압승했다.
선거기간중 샤론은 바라크의 ''실패한 평화'' ''실패한 안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특히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에서 양보만 하고 얻은 것이라고는 이스라엘의 안보위기뿐이라고 비판하면서, 예루살렘 전역에 대한 주권 고수, 기존 팔레스타인 자치구이외의 추가 영토양보 불가 등 강경노선을 표방하고 나섰다.
이스라엘 유권자들은 바라크의 유화정책을 거부하고 샤론의 강경정책을 택했다.
샤론의 승리와 더불어 1993년 오슬로 협정과 1998년 와이조약으로 이어지던 중동평화협상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이스라엘 노동당과 바라크 총리의 평화 구상은 좌절되고 말았다.
물론 샤론 신임 총리 당선자가 일거에 중동 평화협상을 파기시킬 수는 없다.
미국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야를 총괄하는 거국 내각을 구성하겠다는 샤론의 구상을 감안할 때,파격적 정책 전환을 가져오기는 힘들 것이다.
더구나 과거 중동평화협상의 주요 돌파구는 공교롭게도 보수 강경노선의 리쿠드당에 의해 마련된 바 있다.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상을 주도했고, 시나이반도의 이집트 반환을 통해 중동평화의 기틀을 구축한 것도 베긴하의 리쿠드당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 준다.
그러나 샤론의 전력과 정책으로 보아 중동평화의 앞날은 험난하다.
이번 이스라엘의 좌절된 평화가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은 크다.
무엇보다 평화협상을 국내 정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교훈이다.
샤론의 알 사 방문은 다분히 계산된 정치적 행동이었다.
결과적으로 샤론이 총리로 당선은 됐지만, 당리당략에 따른 정치적 포석은 막대한 인명의 손실, 평화협상의 중단, 이스라엘 내분을 가져왔다.
사리사욕이 ''평화''라는 이스라엘의 대승적 목표를 희생시킨 셈이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비교론적 함의는, 평화의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재빨리 포착해야 한다는 점이다.
불필요한 명분과 사소한 실리 때문에 시간을 끌면 끌수록 평화협상의 결렬 가능성은 높다.
사실 오슬로 협정 이후 7년이란 긴 세월을 끌면서 양측 모두에게 협상의 피로감을 가중시켰고,그 결과 바라크와 아라파트 모두 패자가 되고 만 것이다.
20개월 전만 하더라도''지금 당장 평화를 (Peace Now)''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보수.강경의 나타냐후를 바라크로 교체했던 이스라엘 유권자들이 단 4개월간의 동요때문에 바라크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샤론을 택하고 말았다.
이번 이스라엘 사례는 ''여론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사태추이에 따라 급변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
협상을 위한 협상보다는 결과를 위한 협상, 당리당략에 의해 좌우되는 협상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대승적 미래를 우선하는 협상을 전개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북측도 무리한 주장을 하지 말고 평화의 기회가 주어 질 때 이를 과감히 거머쥐어야 한다.
그래야 쌍방이 득을 보는 ''윈-윈''게임이 가능해지고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cimoon@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