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사회의 금융계 대부로 신한은행 창립의 초석을 놓았던 이희건(84) 신한은행 회장이 18년간 수행해 온 신한은행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이 회장의 퇴진은 신한은행의 금융지주회사 추진과 맞물려 향후 이 은행의 경영체제에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16일 "이 회장이 고령인 데다 지난 연말 일본에서 운영하던 간사이흥은의 파산 충격 등으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은 오는 5월 금융지주회사 출범 전까지 회장직을 공석으로 둔 채 라응찬 부회장이 역할을 대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신한은행측은 이 회장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재일교포 대주주들의 지분에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신한은행은 1천1백여명의 재일교포가 28%의 지분을 갖고 있고 이 회장의 지분율은 0.13%이다.

이 회장은 재일교포 사회의 금융계 대부인 동시에 국내 금융산업 발전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그는 1917년 경북 경산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막연한 꿈을 안고 15살에 현해탄을 건넌 이 회장은 낮엔 노무직으로 일하며 주경야독의 노력 끝에 23살에 명치대학 전문부를 졸업했다.

오사카 동남쪽에 있는 쓰루하시역 앞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를 시작한 그는 곧 교포들 사이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아 상가 번영회 일을 맡게 됐다.

이어 55년엔 일본 금융기관들로부터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던 교포 상공인들을 위해 오사카흥은 설립을 주도했다.

후에 오사카흥은은 간사이지방 5개 흥은과 합병해 간사이흥은으로 거듭났다.

이 회장은 재일동포들의 국내사업이 본격화된 77년엔 원활한 금융지원을 위해 국내에 제일투자금융을 설립했다.

이어 한국이 심각한 외환위기에 몰렸던 82년에는 정부의 요청으로 교포자금을 끌어모아 그해 7월 신한은행을 설립했다.

일본이 엔화 반출을 규제하고 있던 당시 교포들이 신한은행 설립자금을 여행용 가방에 숨겨 국내로 수송했던 일명 ''007작전''은 아직도 감동적인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회장직을 20년 가까이 수행하면서 정치권으로부터의 외압을 막아 신한은행이 최고의 우량은행으로 발돋움하는 초석을 닦았다.

하지만 지난해말 동포사회의 최대 신용조합인 간사이흥은이 파산선고를 받으면서 신한은행 회장직 사의로 이어졌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