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각국이 자국 경쟁관련법의 역외적용을 확대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경쟁관련법의 역외적용이란 외국기업이 외국에서 불법 카르텔 형성 등으로 자국에 피해를 줬다면 자국 경쟁관련법을 적용해 제재를 가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기업들이 외국의 경쟁관련법 역외적용으로 벌금을 부과받은 사례는 5차례에 걸쳐 10개기업 9백90억원에 이르고 있다.

최근 일본업체가 세원아메리카의 라이신 관련 추가 담합혐의를 미국 당국에 제보해 조사중이며,최고 1억달러의 벌금이 부과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우리 기업의 피해는 속출하고 있으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의 역외적용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독일·일본의 흑연전극 생산업체가 불법 카르텔을 형성해 일본업체가 우리나라 시장을 독차지하도록 한 혐의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것이 첫 역외적용 시도 사례다.

◆ 역외적용 확대 왜 고심하고 있나= 공정위가 국내 공정거래법 역외적용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선뜻 확대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두가지다.

먼저 미국 EU 등을 섣불리 흉내내다가 더 큰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다.

미국 EU 등 선진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우리 기업보다 경쟁관련법을 더 잘 지키고 있어 이를 빌미로 우리 기업들이 더 큰 보복을 당할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법적 관할권의 행사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점이다.

법적 관할권과 관련해서는 선진국간에도 많은 논란을 빚어 왔다.

80년대초 미국법원이 ''영향력 이론''에 입각해 역외적용을 확대하자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은 주권침해라 주장하며 강력한 외교적 항의를 제기하는 한편 대항법률을 제정해 대응해 왔다.

최근 이들 국가도 법적 관할권을 인정하는 추세이긴 하나 과연 우리나라가 시정조치와 형벌을 부과하는 절차적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점은 또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주로 어떤 분야가 문제될 수 있나= 외국기업의 한국내 시장점유율이 높은 분야가 주로 문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외국기업들은 서로 경쟁을 하기보다는 지역분할이나 기업결합을 통해 높은 가격을 받으려는 유혹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외국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높은 분야는 반도체 부품과 같은 부품소재 산업과 가전 등 일부 소비재 산업이다.

이들 분야는 대일 의존도가 높은 분야여서 일본기업들이 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이 아직 자국 경쟁관련법의 역외적용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양국간 분쟁의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반면 우리 기업들의 피해를 일으키고 있는 미국·EU지역 기업들은 우리나라에서 시장점유율이 높은 분야가 적어 역외적용이 가능한 분야가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역외적용을 확대해 가는 데는 신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EU 등의 역외적용의 결과 국제적으로 불법이 입증된 경우 이것이 국내 산업 및 소비자에게 준 피해에 대해서는 우리 공정거래법을 역외적용해 제재를 가하는 것은 큰 부담이 없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경우 국제공조의 틀 내에서 역외적용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경쟁당국간 사전정보 교환을 강화하고 양자협정을 체결하는 등 국제협력을 강화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

아울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을 중심으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다자간 규범정립 움직임에도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

최경환 전문위원.經博 kgh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