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객사에서 1월 판매분에 대해 가격을 20% 깎아 지불하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상도의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두칠(徐斗七) 한국전기초자 사장이 최근 사내 소식지 "열린 대화방"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위기를 공감하는 것.

그의 경영철학인 "열린 경영"에는 이처럼 기업 비밀이란게 없다.

"직원들이 동요할 수도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위한 첫 단추입니다"

한국전기초자는 지난해 매출 5천7백억원에 당기순이익 1천7백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97년만 하더라도 차입금이 3천5백억원에 육박, 1천1백14%라는 살인적인 부채비율에 허덕이고 있었다.

당시 이 회사의 경영진단을 맡았던 미국계 컨설팅 기관인 부즈 앤드 해밀턴은 "HEG can not sirvive.(한국전기초자는 결코 생존할 수 없다)"라고 결론지었다.

97년에만 5백9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부실덩어리인 이 회사를 서 사장은 불과 3년만에 정상화시켰다.

서 사장이 이 회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97년 12월3일.

대우전자가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그를 대표이사로 임명했다.

그는 당일 송별연을 마치자 마자 토요일 밤 10시 기차를 타고 공장이 있는 구미로 향했다.

"내정은 됐지만 정식 발령은 그달 29일에 열리는 주총에서 결정될 예정이었습니다. 회사 현황이나 파악해 두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서 사장이 든 가방에는 양말 두켤레와 와이셔츠 한 장 뿐이었다.

일요일 새벽 1시에 도착한 그를 맞은 것은 77일간의 파업으로 망가질대로 망가진 공장이었다.

이때부터 서 사장은 3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회사 살리기에 들어갔다.

인근에 16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얻고 독신 생활에 들어갔다.

파출부도 두지 않았다.

혼자서 밥을 지어먹고 빨래도 직접 했다.

서 사장은 지금도 운전기사를 따로 두지 않고 있다.

그가 먼저 한 일은 파업으로 손을 놓은 직원들을 일자리로 복귀시키는 것.

당장 고용보장 각서를 요구하는 노조와 부딪쳤다.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책임지십시오. 제 발로 걸어나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 한 사람도 퇴출시키지 않을 것이오"

이렇게 직원들을 설득시킨 그는 장부상 재고로 남아 경영실상을 왜곡해온 2백만개의 불량품도 깨버렸다.

직원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이때부터 서 사장과 직원들은 공휴일과 명절은 물론 일요일도 반납하고 3백65일을 하루같이 생활했다.

서 사장은 97년 12월에만 17차례나 직원들을 상대로 경영현안 설명회를 열었다.

3교대로 일하는 직원들의 근무시간에 맞춰 새벽 3시, 아침 9시, 오후 4시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재고의 불량수준과 경쟁사 동향 등 기업 비밀까지 완전 공개하고 자발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이렇게 3년간을 전력투구한 결과 회사는 영업이익률 35%, 부채비율 30%대의 초우량 기업으로 변신했다.

직원 1인당 매출액 4억5천만원, 순익 1억원 이상을 내고 있다.

노사단결이라는 효과도 거뒀다.

지난해 12월31일 임금 5% 인상과 보너스 1천2백50% 지급 조건으로 임금협상을 4시간만에 마무리지었다.

98년 이후 1일 임단협 타결이라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뒤에는 최고 경영자의 리더십과 솔선수범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지난해 2월 60회째 생일을 맞은 회갑에도 6시에 출근해 간부회의를 주재했다.

기본에 충실하고 원칙을 존중한다는 좌우명대로 생활했다.

그는 지난해만 금오산을 7번 올랐다.

첫번째는 영업팀과, 두번째는 1공장 생산직과 함께.

이런 식이었다.

금오산은 해발 9백98m의 경사가 가파르고 돌이 많은 악산(惡山).

"3년동안 족히 20번은 넘게 올랐을 겁니다. 정말 지독한 분입니다"(경영기획팀 정창민 차장)

이 회사는 99년말 일본의 아사히글라스에 인수되면서 감원은 커녕 1백여명의 간부가 승진하고 임금도 올랐다.

아사히사의 세아 회장은 "월드 베스트 컴퍼니"라고 극찬했다.

서 사장의 임기는 내년 말까지다.

원래 아사히측에서는 5년 재계약을 원했지만 떠날 때가 됐다는 생각에서 거절했다.

"우리 회사의 구호는 혁신입니다. 말 그대로 살가죽을 벗겨내고 피가 나는 아픔을 견뎠습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