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근무하는 A씨는 최근 회사로부터 퇴직을 종용하는 통보를 받았다.

일류대학 졸업 후 20여년을 회사를 위해 열심히 살아온 40대 중반의 A씨가 퇴직하고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조그만 가게를 내는 일이었다.

이 또한 남보다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었다.

A씨 당사자뿐 아니라 그를 아는 모든 후배직원들은 절망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회사에 대한 충성과 희생이 더 이상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됐다.

<>종신고용에 의한 고용보장과 기업 경쟁력=IMF체제 이후 많은 기업이 비용절감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인원감축을 실시했다.

대우자동차 분규에서 볼 수 있듯이 감축 대상인 종업원과 그 가족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기업입장에서 보면 정리해고를 통한 비용절감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고 기업이 망할 경우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되므로 인원감축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과연 이러한 인력감축이 고용과 기업경쟁력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인가.

전통적으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는 기업은 피고용인이 주어진 과업을 성실히 수행하고 기업내 규칙과 규범을 준수하는 한 그들의 고용을 보장해 줄 책임이 있다는 묵시적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피고용인의 충성 복종 희생에 대한 반대급부로 고용을 보장하는 도덕적 계약의 구체적 수단이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및 유럽 국가 기업들이 채택한 종신고용제이다.

고용보장 수단으로서 종신고용의 단점은 환경변화에 따라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업 환경이 안정적이고 변화가 적었던 과거의 경우 종신고용의 단점,즉 조직의 비유연성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일본을 비롯해 종신고용을 채택하고 있던 많은 기업이 종업원의 높은 충성과 희생을 바탕으로 뛰어난 경쟁력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기업 환경이 급속히 변하고 이에 따라 조직의 유연성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대두된 오늘,종신고용에 입각한 과거의 도덕적 계약을 유지하는 것은 기업에게 너무나 큰 비용을 치르게 하고 있다.

<>시장원리에 따른 고용과 기업 경쟁력=종신고용에 입각한 도덕적 계약을 채택한 일본 및 유럽국가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그리고 순수한 시장원리에 입각한 고용관계를 실행하는 미국 및 영국기업의 약진은 우리 기업으로 하여금 전통적 도덕적 계약을 포기하고 앵글로 색슨적 고용관계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

시장원리에 따른 고용이란 피고용인은 기업에게 노동을 제공하고 기업은 제공된 노동이 가치가 있을 때 그 가치에 합당한 임금을 지급하는 관계이다.

따라서 제공된 노동이 더 이상 기업에 가치가 없을 때는 언제든지 고용관계를 청산할 수 있다.

피고용인의 경우에도 임금에 상응하는 노동의 제공만이 요구될 뿐 그 외 기업에 대한 충성 희생 등의 의무는 주어지지 않는다.

단순히 시장원리에 입각한 고용관계가 오늘의 기업환경에서 경쟁력을 갖는 유일한 대안인가.

시장원리에 의한 고용이 갖는 강점은 조직의 높은 유연성이다.

하지만 치명적 단점은 종업원의 기업에 대한 충성 몰입 신뢰 등을 기대해서는 안되고 또 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업간 경쟁은 조직의 유연성 뿐만 아니라 종업원의 기업에 대한 충성 몰입 신뢰 팀워크가 오히려 과거보다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시장원리에 입각한 고용관계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이같은 점에서 심각한 한계를 보여준다.

<>피고용 능력 제고를 통한 고용보장과 기업 경쟁력=조직의 유연성과 더불어 종업원의 기업에 대한 충성 몰입 신뢰를 동시에 확보하는 고용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로 "새로운 도덕적 계약"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종업원의 충성과 신뢰를 받기 위한 고용보장을 조직의 유연성을 해치는 종신고용 대신 종업원의 피고용 능력을 배양해 줌으로써 해결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다시말해 다른 기업에서도 널리 쓰일 수 있는 일반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종업원에게 끊임없이 제공,현 직장이 아니더라도 타 기업에 충분히 고용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자는 것이다.

실제로 피고용 능력 제고는 종신고용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고용보장이라고 할 수 있다.

종신고용이란 소속 기업이 계속 생존한다는 가정 하에서만 가능하다.

오늘날과 같은 치열한 경쟁시대에서는 어느 기업도 미래의 생존 가능성에 대해 자신할 수 없다.

이는 종업원의 종신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는 애기다.

하지만 피고용 능력 제고를 통한 고용보장은 설사 소속 기업이 망한다 할지라도 타 기업에 고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보다 강력한 형태의 고용보장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도덕적 계약에 대한 구체적 기업 사례 및 방법은 다음에 자세히 소개하도록 한다.

박철순 < 서울대 경영대 교수 cpark@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