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로마,지혜의 여신)의 올빼미는 황혼이 짙어지면 날기 시작한다''

헤겔의 ''법 철학''에 나오는 명언이다.

지혜(철학)는 세상사의 변동이 차분히 가라앉아 그 세계를 냉정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에야 발견 가능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전근대사회였던 중세까지는 학자들의 철학적 사유와 추론 활동이 대단히 활발했다.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오히려 바쁘고 혼란스러운 탓인지 극히 소수의 전문가 집단만이 철학에 골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은 높은 수준의 지적 호기심과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없는 시대일까.

게놈지도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인간을 복제하며 달 착륙에 성공했다고 해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철학과 지혜를 외면하는 것이 명예 권력 부 등의 감각적인 현실생활에는 유리할지 모르나 긴 역사발전에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금 우리는 인간 조건을 파괴하고 갈등을 야기하면서도 높은 문명에 자만하고 있다.

자기파멸의 위기를 의식하지 못하는 지혜(철학)의 결핍 때문이다.

그만큼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은 상황(존재)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예측함은 물론 높은 가치인식을 토대로 효과적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로운 인간성의 발휘를 절실하게 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철학의 부활은 그것이 비록 유행에는 역행할 지라도 절박한 인간성 회복의 길임에 틀림없다.

이와 같은 시대의 열망을 충족시킬 만한 좋은 책이 나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과학부 편집장 출신의 고트리브(Anthony Gottlieb)가 쓴 ''이성(理性)의 꿈(The Dream of Reason)''(W.W.Norton & Company,New York,2000)이 바로 그것.저자는 이 책에서 그리스시대부터 르네상스 이전까지 서양 철학자들의 이성적 추론 내용을 밝히고 있다.

르네상스 이후 현대까지는 곧 2권으로 나올 예정이다.

이 책은 규범화돼 읽기 딱딱한 통상의 철학입문서와는 다르다.

철학자들이 지적 호기심에 이끌려 사색한 내용을 역사서술체 형식으로 썼다.

철학사에서 소홀히 다뤘던 탈레스,본질론을 탐구한 엠페도클레스,신에 대해 불경했던 아낙사고라스,철학의 순교자인 소크라테스,공화론자인 플라톤,정의론 인식을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토관에서 살았던 기인 디오게네스,단순한 삶을 살았던 에피쿠루스 등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기술하고 그들이 근대 자연과학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쉽게 서술했다.

철학 없는 시대에 참 철학사를 읽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