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역사학자가 쓴 ''히틀러의 여인들''(안나 마리아 지크문트 지음,홍은진 옮김,청년정신,8천5백원)은 치맛자락에 감춰진 권력의 명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제3제국은 남성 동지들보다 더 열정적인 여인들의 희생 위에서 탄생했다.
히틀러에게 영혼을 저당잡힌 정부(情婦)들.
이 책에는 사랑과 광기로 얼룩진 비운의 여성 8명이 등장한다.
삼류 연애소설을 좋아하고 배우를 꿈꾸던 사진관 점원에서 히틀러의 숨겨진 여인으로 짧은 생애를 보내고 방공호에서 결혼반지를 낀 채 동반자살한 에바 브라운.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를 만든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히틀러와 나치의 선전에 온몸을 바친 레니 리펜슈탈.
변방 출신의 히틀러를 뮌헨 사교계에 소개하고 상류사회 예법을 가르치며 가정교사 역할까지 맡았던 엘자 브루크만.
보석까지 팔아가며 뒷바라지 한 헬레네 벡슈타인.
히틀러를 따라 일가족 모두 자살한 막다 괴벨스.
패망 후 전범수용소를 전전하며 화려함의 대가를 치렀던 엠미 괴링….
히틀러를 사모했으나 에바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유대인 말살에 앞장선 발두어와 결혼했던 헨리테 폰 쉬라흐의 맹신에 가까운 흠모까지 숱한 이면사가 책 속에서 꿈틀거린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