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코스에서 이루어진 라운드였다 할지라도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성적이 들쭉날쭉하는 경우는 필자도 여러 번 경험했다.

자신의 핸디캡보다 성적이 좋았을 때는 곁에서 바라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우쭐거리게 마련이지만,저조했을 경우는 동반자들에게 들려주는 변명이 구구해진다.

이를테면,지난 밤의 모임에서 과음을 했다거나,아내의 요구를 매정하게 따돌리지 못해 내키지 않는 부부관계를 가졌다고 둘러대는 골퍼들도 있다.

혹은 내가 보기에는 멀쩡한 날씨인데,궂은 날씨 때문에 허리에 담이 결린다고 호소하거나,동반자들의 입방아에 주눅이 들어 리듬감각을 잃었다고 싸잡아 볼멘 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혹은 새 것으로 바꾼 골프채가 아직 손에 익지 않아서라거나,티오프 시간에 임박해 허겁지겁 골프장에 도착해서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탓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골칫거리였던 스윙자세를 바꾼 지 며칠 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 이하의 성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골퍼들도 있다.

바람 때문에,또는 동작 빠르지 못한 캐디 때문에….

변명할 말을 찾다가 궁색하게 되면,새로 마련한 신발이 맞지 않아 라운드를 망치고 말았다는 넋두리까지 듣게 된다.

그런 경우,동반자의 애꿎은 처지를 동정하는 척 고개도 끄덕여 주고 가벼운 맞장구도 쳐주긴 하지만,실제로는 애석하게 생각하거나 염두에 새겨두지 않는다.

왜냐하면,나 자신도 성적이 저조했을 때,그처럼 터무니없는 변명을 둘러대며 일말의 동정심을 구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다 보면,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이유가 백 가지도 넘는다고 한다.

변명할 말을 찾다가 궁색하게 되면,나중에는 ''오늘은 이상하게 안 되네''라는 말까지 동원된다고 한다.

그런데 골프가 안 되는 백여 가지가 넘는 까닭 중에 마지막으로 둘러댄다는,''이상하게 안 된다''는,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이 한마디가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릴 때가 많았다.

나 자신이 생각할 때는 그 날의 날씨,그 날의 스윙 자세,그리고 그 날의 컨디션까지도 모든 것이 정상적인데,정말 이상하게 안 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jykim@paradi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