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의 성신도(星辰圖)에는 붉은 해속에 발이 셋 달린 까마귀와 달속에 개구리를 그려 놓았다.

삼족오는 각저총 덕흥리벽화고분 개마총 등의 해그림 속에 또렷하게 그려져 있다.

붉은 까마귀가 고구려의 상징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도 ''삼국사기''에 전한다.

태양을 양, 달을 음으로 생각했던 음양론의 한 표현이다.

이런 사상의 표현은 이미 BC 2세기께 중국 서한(西漢)초기 유적인 호남성 장사(長沙)의 마왕퇴(馬王堆) 1호고분에도 나타난다.

중국 한대(漢代)의 ''회남자(淮南子)''에는 태양의 화신인 붉은 까마귀와 삼족오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신라 소지왕이 488년 까마귀의 인도에 따라 연못에서 ''거문고 갑을 쏘아라''라고 쓰인 글을 얻어 역적모의를 했던 궁녀와 중을 죽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고구려벽화에 삼족오가 그려지기 시작했던 AD 300년대를 지나 이때 와서야 이 사상이 신라에 전해졌음을 뜻한다.

당시 거문고 갑에는 왕을 상징하는 태양속에 삼족오가 그려졌을지도 모른다는 한 학자의 흥미로운 해석도 있다.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우리의 태양신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설화도 주인공의 이름에 모두 까마귀를 뜻하는 글자가 들어 있다.

연오랑은 일본에 건너가 왕이 됐다.

학자들이 태양신화의 전파루트를 중국~한반도~일본으로 보는 근거도 여기 있다.

현대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까치는 길조이고 까마귀는 흉조라는 관념은 고대에는 없었다.

고대 한국인에게는 까마귀도 신조(神鳥)였다.

일본에서도 예부터 까마귀를 신령한 새로 알고 있다.

진무천황의 정벌때 험로를 안내한 것은 까마귀였다.

오늘날도 까마귀를 신의 사자로 모시는 사당이 있다.

특히 신토(神道)에서는 성조(聖鳥)로 대접받는다.

구마노진자(熊野神社) 계통에서는 전통적으로 삼족오가 숭배대상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고구려의 대표 상징물인 삼족오를 도형화한 일본축구협회의 엠블렘이 홍보물마다 등장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삼족오는 고대 한.중.일이 공유했던 문화현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