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경제학 교수.국제대학원장 >

요즘 우리 사회에 경제 성장과 분배를 양자택일의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성장을 추구하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발생시켜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반드시 심화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경제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 질문에 해답을 얻고자 노력해 왔다.

18세기 애덤 스미스의 답변은 분명했다.

그는 ''국부론''(1776)에서 경제가 성장하는 사회에서는 빈곤한 노동계층의 생활상태가 가장 행복.편안해지고 반면에 침체사회에서는 힘들고, 후퇴사회에서는 비참하다고 했다.

경제성장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 학계의 찬.반론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반세기 세계의 경제개발 경험을 토대로 살펴보면 확실한 해답을 얻기 어렵다.

하지만 국민의 절대적 빈곤퇴치에 경제 성장이 이바지한다는 긍정적인 논거들이 반대의 논거들을 압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러한가.

경제성장을 가져오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생산 요소 투입의 증가, 둘째는 요소 배분의 효율 제고, 셋째는 기술혁신이다.

무엇이 이들 성장요인을 이끌어 내는가.

역시 다음 세 가지가 성장 요인을 부추기는데 특히 중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첫째는 무역과 외국투자의 개방성이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를 가능케 함으로써 요소 배분 효율성을 제고할 뿐 아니라 요소 수입증가,기술혁신에도 이바지한다.

둘째는 적절한 재정 금융 환율정책이 경제주체의 저축과 투자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쳐 성장에 이바지한다.

셋째로 경제적 자유, 재산권과 계약 등 관련법 제도, 정치권과 정부의 부패-청렴도 등 제도적 요인, 다시 말해서 얼마나 시장기구가 잘 작동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빈곤은 단순히 소득이 낮은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빈곤은 그밖에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측면의 문제다.

분배를 배려한 경제성장이 빈곤퇴치의 기본 전략으로 판명되었다.

20세기 후반 고도성장과 분배불평등 축소의 양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한 개도국 사례는 한국을 비롯해 몇몇 국가에 불과하다.

대다수 개도국에 비하면 한국은 모범국이다.

이제는 우리에게 낯간지러운 소리로 들리겠지만, 저명한 경제학자 로버트 루카스는 환란 이전 한국의 개발모형을 칭찬한 바 있다.

개도국에 ''한국을 따라 배우라'' 하는 것은 농구 초보자에게 ''마이클 조던 모델을 배우라''는 것과 같다고.

지난 97년의 환란은 한국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것은 비단 경제적 손실(소득 감퇴와 구조 조정에 따른 기업도산,대량 실업 등)뿐만 아니라 국민적 자긍심 등 정신적 손실이 컸음을 의미한다.

동남아 제국, 중국 등 후발 개도국이 부러워하던 경제개발 모형이 대외적으로 비웃음을 받게 된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내에서조차 배척받고 있다.

물론 세계무역기구(WTO) 시대에 산업 지원정책을 10년, 20년 전에 유효했던 경제전략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

대기업들의 방만한 차입경영, 외형 확장주의를 두둔할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의 핵심은 국민 생산활동을 조직화하는 경제주체(기업)들이 도매금으로 매도되고 있고, 그간 건실한 살림을 꾸려온 경제주체(대다수의 가계)들이 허탈감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 조직적으로 집단이기주의를 관찰할 수 있는 계층(일부 강성 노조), 부채감면 수혜 계층(운동권 농민) 등의 목소리가 무원칙한 정치권을 통해 확대돼 여과없이 관철되고 있다.

남쪽의 곳간 채우는 일보다 북쪽에 퍼주는 일이 너무 빈번하고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국가의 경제적.정치적 정체성에 이바지해 왔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온 중산층이 허물어지고 있다.

''생산적 복지'' 정책의 참 뜻이 분배 못지 않게 생산에 있다.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살려야 지속적 빈곤퇴치가 가능하다.

남의 경제력이 신장해야 북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