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이후 일본 상장기업들의 연구개발 지표가 최악을 기록했다는 분석(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이 나왔다.

일본 상장기업들의 1개사당 연구개발 투자가 지난 10년이래 가장 낮았다는 것이다.

연구개발이 성장잠재력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는 정치 무역 주가 금융 등과 관련한 각종 이상조짐과 더불어 일본의 위기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에서는 일본 기업들이 정말 이렇게까지 됐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연구개발에 대해서는 단일지표만 있는게 아니다.

또 거시적인 대내외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게 마련인 총량적 지표 자체에만 주목할 경우 또 다른 측면을 간과할 위험도 있다.

그렇다면 버블경제의 붕괴가 시작된 91년부터 지금까지 10년동안 일본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를 보다 주의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10년간의 추세=자료에 따르면 99년4월∼2000년3월(일본 상장기업 회계연도)을 기준으로 일본 증권시장에 상장된 1천6백63개 기업들의 1개사당 종업원은 1천9백46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93년의 최고 2천5백26명에서 23% 감소한 최저수준이다.

1개사당 매출액은 최고 1천6백79억엔(91년)에서 23.5%가 줄어 역시 가장 낮은 1천2백84억엔이며,1개사당 설비투자도 최고 1백1억엔(92년)에서 48.5%가 감소해 최저수준인 52억엔을 기록했다.

연구개발 투자 역시 1개사당 최고 56억엔(93년)에서 7.7% 줄어든 52억엔으로 최저였다.

지난 10년간 상장기업의 수가 꾸준히 증가(연평균 30개사)해 왔지만 이런 조사 결과만 보면 일본의 장기불황이 최근에 이르러 가장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간과해선 안될 지표들=하지만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특징들도 있다.

우선 지난 10년간 설비투자의 급속한 감소 추세와는 달리 연구개발 투자는 상대적으로 변동이 적었다.

또 90년대 초반에는 설비투자가 연구개발 투자의 2배 정도였으나 지금은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투자의 구성비가 거의 50대50이다.

투자가 전반적으로 위축돼 왔지만 장기불황 속에서도 일본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투자 비율도 마찬가지다.

비록 전 회계연도(99년)에 비해 0.1%포인트 감소한 4.03%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4%대에 머물고 있다.

불황이 시작된 91년의 3.2%에서 시작,이후 꾸준히 증가해 전체 평균이 4%대에 진입했다는 것과 핵심업종들의 경우 이 비율이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는 것은 특히 주목된다.

선택과 집중전략도 감지된다.

전기기기는 현재 전체 연구개발 투자의 42.6%를 차지할 정도로 지난 10년간 연구개발 투자를 주도해 왔다.

또 정보기술과 바이오 등 신산업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투자가 크게 증대하고 있다.

장기불황 속에서도 강점분야의 유지,미래산업에 대한 투자 등 산업구조의 고도화 추세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전략의 변화와 교훈=역사적으로 일본 기업들은 환경변화에 대해 나름대로 대응전략을 구사해 왔다.

73년 오일쇼크와 80년대 초반 기술입국 및 경박단소화 바람에 기업들은 각각 실용적인 연구개발 전략으로 대응했다.

이후 미국과의 기술마찰이 증대하면서 연구개발과 마케팅 연계,기초연구 강화 등으로 대응기조를 바꾸기도 했다.

그러다가 91년 버블경제의 붕괴가 시작되고 이것이 예상외로 길어지자 기업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은 장기불황에 따른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연구개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불황 속에서도 일본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의지가 결코 약화되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성공적인 기업은 불황시기에 오히려 연구개발 투자를 늘린다는 연구들이 있긴 하지만 우리 기업들이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인 것 같다.

안현실 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