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업체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PC수요 감소로 재고가 눈덩이처럼 불어남에 따라 반도체메이커들도 수익악화의 고통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서도 얼굴 만면에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 반도체업계의 노장이 있다.

바로 프랑스최대 반도체메이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최고경영자(CEO) 파스쿠알레 피스토리오(65)다.

이탈리아 시실리섬 출신인 피스토리오는 맘좋은 빵집 아저씨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만 경영에서 만큼은 배짱과 추진력 면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맹장"이다.

최근 수년동안 피스토리오의 지휘봉 아래 ST는 어느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가도를 질주해 왔다.

지난해 ST는 매출이 55%나 늘어 매출액 기준 세계 7위의 반도체 업체에 올랐다.

4.4분기 매출도 48.53% 늘어났으며 이 기간 순익은 무려 1백51%나 껑충 뛰었다.

대다수 경쟁업체들과는 달리 올해 성장 전망도 밝다.

미국의 경기둔화세로 인해 약간 힘이 빠지긴 했어도 올해 26% 성장은 너끈히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최근 반도체조사기관 VLSI가 내놓은 업계 평균 매출증가율 전망치인 1.2%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ST가 이처럼 업계 전체에 퍼진 불황에도 끄덕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미래를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진 피스토리오가 일찌감치 추진한 "디지털 전략" 덕분이다.

미국과 일본 반도체업체들이 세계 시장을 장악했던 80년대만 해도 PC수요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따라서 너도나도 PC용 반도체칩 생산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피스토리오는 PC 대신 휴대폰, 셋톱박스, 스마트카드 등 디지털정보기기를 위한 칩 개발에 승부를 걸었다.

"PC시대는 언젠가 막을 내릴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훌륭한 승부수였다.

전문가들은 올해 PC수요가 5%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조만간 PC가 사라질 것이란 "소멸론"까지 등장했다.

반면 ST가 선택한 휴대폰 자동차 가전 등 디지털기기용 칩시장은 올해 20%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코메르츠방크의 반도체전문 애널리스트 피터 녹스는 "ST는 공이 제일 잘 맞는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업계 메커니즘이 ST의 구미에 딱 맞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업체들과의 재빠른 제휴전략도 성장의 견인차로 꼽힌다.

피스토리오는 80년대부터 노키아 노텔 휴렛팩커드 등 쟁쟁한 고객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함으로써 든든한 사업기반을 다져 왔다.

이처럼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는 지난 14년동안 3백50명의 임원중 불과 6명만이 피스토리오 곁을 떠났을 만큼 경이적으로 낮은 이직률을 낳았다.

그러나 피스토리오는 이 정도 성공에 만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최근 비즈니스위크지와의 인터뷰에서 호언장담한 것처럼 "ST를 세계 최고 반도체메이커로 키우는 것"이 그의 야망이기 때문이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