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26일 밤 서울에 왔다.

도착시간을 당초의 27일 오전에서 26일 밤으로 갑자기 앞당기는가 하면 산업시찰 계획을 취소하고 이례적으로 야당 총재와의 면담에 시간을 내는 등, 보기에 따라서는 돌출행동으로 비칠지도 모를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포커페이스형 인물''이라는 평판이 어울리는 듯도 싶다.

우리가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방한에 각별한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최근 북한-미국 관계가 냉각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다 부시 행정부가 대(對) 한반도 정책의 틀을 새롭게 짜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한.미.일 3국의 대북 공조를 주도해 왔던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와 ''대북 정책조정관'' 자리를 부시행정부가 폐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때에 푸틴 대통령이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역할확대를 강조하면서 북한에 이어 한국을 방문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물론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위해 러시아의 적극적 역할이 긴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건설적 기여''를 내세운 러시아의 한반도 개입 정책이 남북간 평화 협력체제 확산이라는 대의명분을 넘어 대미(對美), 대한(對韓) 협상카드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한.러 정상회담에서 정부는 이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남북한 관계진전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 외에도 양국간 실질 경제협력문제 및 남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삼각협력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한.러 양국은 이번 회담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 사업 추진을 위한 ''교통협력위''와 ''철도대표부'' 설치에 합의할 것으로 보여 삼각협력 분야에서는 가시적 성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나홋카 공단 개발 촉진, 이르쿠츠크 가스전(田) 공동개발 문제 등이 현안으로 걸려 있는 양국간 실질경협분야에서는 러시아측의 성의있는 태도가 요구된다.

러시아측은 한국기업들이 해외투자에 너무 몸을 사린다고 불평이지만 지나치게 높은 조세부담과 빈번한 세무사찰 같은 투자장벽부터 허물어야 할 것이다.

한국으로선 경협확대도 중요하지만 이미 연간 10억달러를 넘어선 대러시아 무역적자의 개선방안을 찾는 일도 시급하다.

특히 러시아측이 한국으로 부터 제공받은 경협차관의 상당부분을 현물로 상환하겠다고 우기는 현실에서 볼 때 무역역조 문제는 이번 회담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