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출 사장은 LG캐피탈 사장직에 내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던 1997년 12월1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찍하다고 회고한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체제로 들어가면서 국가경제 전체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던 순간 아니었습니까. 그 때 신용카드사 사장을 맡으라니 눈 앞이 캄캄했어요.

콜 금리가 35%를 넘나들던 살인적인 고금리 시절이었으니까 영업이 제대로 될리 없었지요, 사장됐다구 축하해주는 전화는 한통도 받지 못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참 안됐다고들 하더군요"

LG캐피탈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6개월통안 신규영업은 모두 중단하고 여신 회수에만 매달리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부실 채권 정리로 최대한 힘을 비축해뒀다가 경기가 좋아지면 남보다 한 발짝 먼저 뛰어나가자는 작전이었다.

그동안 바닥에 가라앉아있던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놓고 프로 정신으로 무장시키는 작업을 서둘렀다.

이 사장은 1998년 3월 ''톱 2000''운동 추진을 선언하면서 LG캐피탈 청사진을 직원들에게 내놓았다.

2000년까지는 수익성과 고객만족도에서 업계 1위에 오르자는 목표였다.

LG캐피탈이 처한 상황을 분명히 인식한 후에 어떻게 해야 1등을 할 수 있는지를 모든 조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보자는 것이 ''톱 2000'' 운동의 핵심이었다.

"LG캐피탈과 캐피탈 원, GE캐피탈 등 해외 선진업체들을 냉정하게 비교해보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검토 결과 자기자본 수익률, 1인당 취급액 및 순이익 등 모든 면에서 큰 격차를 보였습니다.

국내 시장 점유율에서도 만년 4~5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어요"

이 사장은 조직내에 만연해 있던 적당주의와 온정주의를 일시에 몰아낼 것을 주문했다.

부서간 이기주의로 정보 교환과 업무 협조가 제대로 안되는 것도 뜯어고치라고 다크쳤다.

곧 이어 톱 2000 추진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일등.성과.도전''이라는 공유 가치를 내걸었다.

젊은 직원 위주로 80명의 선발대를 구성해 변화를 주도하도록 분위기를 다잡아갔다.

고객층을 세분화한 신상품 개발도 서둘렀다.

''톱 2000''운동을 추진하면서 이사장은 지역본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현장을 뛰는 직원들과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해야 우리가 부족한 점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본사에만 앉아 있으면 현장감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영업 직원들에게 구두 티켓을 나눠주면서 열심히 뛰라고 독려한 이 사장의 추진력과 승부근성이 오늘의 LG캐피탈을 있게 한 밑거름인 셈이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