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6일 오후 4시 평양 고려호텔 2, 3층의 단체상봉장은 감격의 눈물이 쉴새없이 흘렀다.

<>.3차례나 이어진 방북단 가운데 유일하게 어머니를 만난 이후성(76)씨는 북의 노모 장모옥(94)씨를 만나고는 "죄송해요 어머니"하며 50년동안 참아왔던 그리운 이름을 되뇌었다.

치매에 걸려 10년째 말을 닫은 장씨는 퀭한 눈으로 "니가 인수애비냐"며 두손을 꼭 잡았다.

50년 1.4후퇴때 홀홀단신 임진강을 건넌 이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아들을 키우며 평생 수절해온 아내 김선녀(74)씨와 아들 인수(55)씨를 붙잡고 ''미안해''하며 통곡했다.

<>.북에 남겨둬 평생 눈에 밟히던 막내아들을 50년에 만난 조구연(90)씨는 아들 병칠(57)씨가 4살때 앓은 장티푸스로 말을 못하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손녀 용숙(27)씨가 "말을 못해도 글로 쓰는건 잘해요"라며 건네준 종이엔 벙어리 아들이 쓴 "저는 조병칠입니다.

아버지 기쁨니다"라는 글씨가 씌어있었다.

필담으로 적힌 아들의 인사를 고이 접어 가슴에 담은 조씨는 큰형과 누나가 운신을 못해 상봉장에 나올 수 없다는 조카들의 말을 듣고 망연자실해했다.

<>.심장박동기를 달고 휠체어에 의지한채 상봉장에 들어선 손사정(90)씨는 "양록이에요.

알아보시겠어요"라며 팔을 흔들어대는 아들 양록(55)씨를 멍하니 바라만 봤다.

"평양 동네는 기억나세요" 안타까운 아들의 말소리가 이어지자 알아듣는듯 눈물을 글썽이던 손씨는 곧바로 먼 허공만 둘러봤다.

1.4후퇴때 이모집에 막내아들을 맡기고 월남했던 손씨는 7년전부터 치매를 앓아왔으나 방북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 선정됐었다.

그러나 정작 아들을 만나고는 기억을 하지 못해 주의를 안타깝게 했다.

/평양=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