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특파원이 전화를 했다.

"김우중 체포조 기사가 워싱턴에서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워싱턴의 언론들이 이를 기사로 다룰 리 없다.

이를 잘 아는 파리특파원이지만 그래도 워싱턴 표정을 묻는 이유는 "있는 그대로 보도하자니 낯 뜨겁고 그냥 지나치자니 직무유기(?)여서 고민이 많다"는 하소연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재룡 주 프랑스대사에게 전화로 현지 표정을 물었더니 "김우중씨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뭐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프랑스의 법령을 존중하고 우리 이미지에 손상이 가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 지어 달라고 (체포조를)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군사정권 시절 안기부가 저지른 김대중 현 대통령에 대한 일본으로부터의 납치사건과 베를린으로부터의 친북인사 납치사건 등은 대(對)일본, 그리고 대독일 외교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현안이었으며 앙금이었다.

경우는 다르지만 우리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프랑스에서 체포조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또 프랑스인들에게 남긴 이미지는 과연 무엇일까.

워싱턴에 배달된 프랑스의 급진지 리베라시옹(19일자)은 "5년전 톰슨 인수를 위해 국빈대우를 받으며 알랭 쥐페 (당시) 총리와 마주 앉았던 김우중 대우회장이 이제는 노조에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다"고 전하고 "체포조가 쥐페 전총리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실 대우는 1996년 프랑스의 국영전자업체인 톰슨을 "1프랑에 인수하겠다"는 제의를 했고 당시 총리였던 쥐페는 이를 원칙적으로 수락했었다.

그러나 프랑스노조가 96년 11월22일 "프랑스의 자존심을 팔아먹는다"며 파리에서 반대시위를 벌였고 이에 자극받은 프랑스정부가 매각계획을 중도에서 철회했던 기억은 아직도 우리에게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번 체포조는 바로 그 프랑스 노조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프랑스 노조는 어쩌면 이번 한국 노조의 시위를 통해 톰슨을 한국에 매각하려는 프랑스정부의 방침을 반대한 프랑스 노조의 당시 입장이 옳았다는 것을 과시하는 기회로 삼고 있는지 모른다.

"하마터면 겉껍데기 대우에 농락당할 뻔했다"는 프랑스인들의 인식을 재삼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실제로 대우가 사상누각(砂上樓閣)이라는 것은 업계의 오래된 분석이었다.

특히 대우의 분식회계는 너무나 유명한 얘기였다.

지난 99년 4월21일자 ''캉드쉬의 위기 3장''이라는 제목하의 ''워싱턴 저널''도 실제로는 (주)대우와 대우자동차간의 분식회계를 다룬 기사였다.

다만 파장을 우려, 실명(實名)을 쓰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야 정부와 언론, 그리고 노조가 갑자기 대우가 모든 ''경제악(惡)''의 근원인 것처럼 한꺼번에 부각시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재정경제부 은행 금융감독원 검찰 국세청 등은 그동안 전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뜻일까.

대우내에도 경리부서가 있고 거기서 일하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조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인터폴(Interpol)이라는 국제간의 수사협조체제를 놔둔 채 ''남의 집 앞마당에 누워 침''을 뱉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르몽드(20, 24일자)는 김우중 전회장을 ''숨만 남아 있는 피해자(victime expiratoir)''라고 묘사하고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정경유착이며 김우중에 대한 체포는 정경유착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신문은 특히 "환란 이후 개혁이 벽에 부딪히자 한국정부가 대우경영자의 구속을 통해 정부의 기업투명성 제고의지를 홍보하려는 노력"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과연 우리중 남을 욕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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